▲ 민 상 금(전 서울시의원)

기원전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고 갈파했다.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속성을 꼬집은 말이다. 그래서 크게는 국가를 만들고 지방정부, 도. 시. 군을 조직한다. 또 끼리끼리 모여 이런저런 수많은 모임 안에서 살아간다. 이때 리더가 어떤 생각을 갖느냐 혹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그가 이끌어가는 집단의 위상과 처지는 천차만별이 된다.
이는 지난 5월22일 재경 해남군 향우회 제39회 정기 총회 겸 체육대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몇 년간 회장의 리더십 부족으로 지지부진하던 향우회가 이번 총회에선 뜻있는 향우들의 힘으로 대성황을 이뤘다.
그 후 언론과 고향에서 들리는 소식은 군수의 3대째 연이은 구속으로 지역 군민은 물론 전국 각지의 출향 향우들의 체면과 위상에 치명상을 입혔다.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세상의 모든 범죄는 단독범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범죄자와 공모 내지는 방관했거나 아니면 최소한 주변의 사회적 환경 탓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에서는 죄인이 죄를 짓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할 때 자기 혼자만의 죄가 아니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라고 한다.
또 다산 정약용도 <목민심서>의 서문에서 목민과 목민관의 자리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사목 즉 군주나 지방수령이 백성을 다스리는 일을 ‘목민’이라 하고 목민의 어려움은 마음은 있으나 몸소 행하기가 어려워 ‘심서’라는 이름을 붙여 <목민심서>”라고 했다.
또 군수의 구속과 해남 군민의 의식이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도 이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혈연, 학연, 지연의 뿌리 깊은 연고주의 영향은 없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가, 지방자치단체, 회사 등 가릴 것 없이 리더의 올바른 가치관이 그가 거느리는 집단의 운명을 좌우한다. 구속된 군수 탓하기에 앞서 해남인 모두 뉘우치고 회개할 일이다.
왜냐하면 해남은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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