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 천 식(농민서예가)

늘 건강을 자랑하시며 하루 담배 한 갑, 소주 한 병을 드시는 아버지께서 지금 전남대화순병원에 입원 중이시다.
내가 아플 땐 서울로 달려갔는데 아버지가 아프시니 화순에서 수술을 한다. 아버지께서 가기 싫은 병원을 모시고 간다. 이런 이유로 요즘 내 마음이 복잡하다.
암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나 해 설득에 설득을 더해 병원으로 모셨다.
내 아버지는 1939년생으로 우리나라의 근현대를 모두 경험하신 분이다.
가난한 집에 3남2녀 중 막둥이로 태어나 중학교 입학을 기다리던 중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입학을 못하고 마을 어른들과 함께 하루 종일 나뭇짐을 나르는 일을 하셨다.
힘이 좋고 키가 큰 어른들을 따라다니기 위해 쉬지 않고 산을 넘었고 종일 걷는 다리와 지게를 멘 어깨가 아무리 아파도 다음날 또 산을 올랐다고 하신다.
일제강점기엔 목화공출 목표를 채우지 못한 동네 어른들이 마을 공회당으로 불려 나가 일본 순사에게 매를 맞는 모습도 보았고, 초등학교 시절에 일어난 6·25 때는 어린 학생들끼리 학교를 지킨다며 화원 장수리에서 화봉리까지 1시간을 걸어 학교에서 밤을 지세우기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동네에서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손수레에 나뭇짐과 솥단지만을 싣고 형님 밑에서 분가한 아버지는 남의 집 머슴을 살고 어머니는 산비탈을 호미로 일궈 생계를 꾸려 나갔다고 하신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 가계부를 직접 기록하고 화원선창에서 무거운 짐을 손수레와 어깨로 날라 배에 싣는 노동일을 하셨다.
그렇게 돈을 벌어 자수성가를 이루신 아버지께선 늘 절약이 몸에 배어 지금도 식당에서 밥 한끼 사 먹기를 아까워하신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아버지와 외식을 한 기억이 별로 없고, 부모님 생신에도 집에서 음식을 준비해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건강하시던 아버지께서 금년 정기건강 검진에서 폐에 조그만 혹이 발견돼 암 수술을 받으신다. 날마다 병원에 가기 싫다며 그대로 사시겠다고 하시는데 내 마음도 같이 흔들린다. 진정 아버지를 위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냥 그대로 사시는 게 좋을지. 진정 아버지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결정이 어렵다.
아버님이 수술을 받으시겠다고 하시면 마음이 편할 텐데 아버지께서 한사코 반대하시니 혼란스럽다. 멀리 있는 가족들은 매일 아버지의 건강을 물으며 전화를 하는데.
아버지께 “자식을 불효자 만들지 말아 달라고. 몸속에 무엇이 있는지 확실히 아는 게 좋은 것 아니냐”며 설득해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담당 의사는 요즘엔 의술이 좋아 수술을 권한다며 이 정도는 걱정을 하지 말라고 말한다.
수술 전 3일 정도는 검사와 몸 상태를 알아보고 수술 후 3일이면 경과에 따라 퇴원을 한다고 하니 마음은 어느 정도 가볍다.
지난달엔 어머니께서 허리를 다쳐 3주간 병원에서 무더운 여름을 피하며 휴가 아닌 휴가를 보낼 수 있었는데 이번엔 아버지께서 교대로 휴가를 받으셨다.
그냥 조그만 혹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온 가족이 아버지의 건강한 여생을 바란다.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