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 남 주(국민대 교수)

조선시대 전라수영에 이어 전라우수영이 설치돼 번영을 누렸던 우수영은 갈수록 어려워져 가고 있다. 우수영 10개 마을 중 동영리를 제외한 나머지 마을은 폐가가 대부분이고, 2㎞ 거리 좌우에 즐비하던 병원, 약국 등 상가도 9할이 폐점됐다.
게다가 최근 우수영 성(城)내에 있었던 관공서도 파출소만 제외하고 모두 동영리로 이전됐다.
조선시대 수영이 있었던 경상도의 부산과 통영, 전라 좌수영의 여수, 충청도의 보령 등은 모두 시가 됐으나 우수영은 거꾸로 폐촌화 돼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역발상 하면 우수영은 금덩이 같은 곳이다. 속된 말로 우수영은 “띵까띵까” 놀면서 발전할 수 있는 천혜의 고장이다.
우수영은 도시화가 안 된 관계로 전국의 조선시대 수영 중 유일하게 민속촌예술촌화가 가능한 곳이다. 전라우수영은 역사와 함께 보기 드물게 다양한 전승민속예술도 병존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강강술래와 부녀농요, 남자들의 집단놀이인 용잽이놀이와 남자들소리 등이 그것이다. 이런 다양한 민속예술은 최근 화합하는 대동놀이가 돼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민속예술촌을 지향하면서 몇 가지 부언하고자 한다.
첫째, 지금까지 우수영은 충무공이나 명량대첩에 너무 매몰돼 있었던 듯하다. 전라우수영의 역사를 중심으로 발전전략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우수영이 455년 동안 배출한 329명의 수사 중 명장 윤득홍이나 이억기 장군을 주목해야 한다. 윤득홍은 1440년 초대 처치사다. 무안 바닷가 출신으로 당시 최고의 해양전문가로 세종이 가장 총애한 해양인물이었다.
이억기 장군은 이순신을 수차에 걸쳐 위기를 극복하게 도움을 준 은인이자 듬직한 선배였다. 우수영은 전라우도의 수군사령부로 서남해의 으뜸 도시였다. 이와 관련된 수많은 역사 그리고 고고유적이 있다. 최근 국가사적으로 승격된 수군진성에는 4대문을 비롯해 국가적인 재난 시 땀을 배출해 신물로 취급되는 명량대첩비, 여수의 진남관이나 통영의 세병관 같은 거대건물인 객사(복파관), 특별히 주목되는 태평정은 웅장하고 화려한 바닷가 정자로 망루겸 풍류처였다. 남쪽 바닷가 성루에 건설됐는데,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준비하면서 우후(부사령관) 이정충과 대화를 나누다 잠을 잔 곳이다.
둘째, 최근 우수영성이 국가 사적으로 승격됐다. 이로 우수영은 다시 호기가 찾아왔다. 이제 국비로 성지 복원사업을 전개하게 됐다. 그 예산 비율은 국비 70% : 지방비 30%(도비15, 군비15)이다. 최하 천억 이상이 소요되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이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사업은 불가능하거나 지체된다. 또 정비복원에서 주민들의 의식주 삶을 그대로 인정하고 자원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주민을 몰아낸 고창의 모양성, 해미읍성과는 달리 주민거주형으로 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거대한 객사나 태평정 등이 복원되면 주민들은 쉼터나 민속공연장으로도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민들은 전승 민속을 스스로 즐겨야 할 것이다.
셋째, 구 우수영초등학교를 매입해 임시 전라남도민속학교를 설립하자. 이를 통해 전남지역 무형유산과 남도민속의 연구관리 및 전승을 지원하고, 우수영민속예술촌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야 한다. 낙안읍성과의 차별화된 경쟁력은 민속에 있다. 폐교는 우수영성 정비를 위해 어차피 매입해야 한다. 2016년 4월에 사용이 중단돼 그 기반시설을 그대로 활용하면 적은 예산으로 남도민속학교 설립이 가능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성지 복원계획에 의해 재건립 돼야한다.
넷째, ‘전라우수영민속예술촌’은 우수영 고유한 역사와 민속자원을 활용해 만들자는 것이다. 필자가 꿈꾸는 공간은 낙안읍성, 주민자치 역량은 임실 치즈마을, 관광지는 전주 한옥마을과 같이 발 디딜 틈이 없는 곳을 지향한다. 지난번에 다녀온 임실의 필봉마을은 농악의 불모지였는데, 1920년대 박학삼을 초빙해 농악을 배운 후 전국 제일의 농악 고장이 됐고, 임실치즈마을은 1966년 신부님의 산양 두 마리로 출발해 우리나라 최고의 치즈브랜드 마을로 성장했다. 사소한 꺼리를 성장동력으로 삼아 성공한 것은 주민들의 열려있는 공동체 정신 그리고 스스로 주체적으로 노력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이제 전라우수영민속예술촌의 신호탄이 울렸다. 깨어있는 지역민, 향우, 선후배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전라우수영민속예술촌은 점점 현실로 가까워지고 있다. 전라우수영이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브랜드로 성장하고, 이를 지역 특산물의 상표화로 지역경제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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