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석 천(전 해남동초 교사)

냉기를 담은 바람이 아침재를 넘어옵니다. 이렇게 찬바람이 불어올 때면 살아온 어제를 되작거려 보게 됩니다.
2016년 한 해 동안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졌던 365일, 8,760시간, 525,600분, 31,536,000초라는 크로노스의 시간이 모래시계 속의 모래처럼 소진되어 갑니다. 흔히 ‘쇠털같이 많은 날’, ‘깨알같이 많은 날’이라는 말로 인생의 날들을 표현하지만 이맘때에 돌아보면 ‘깨알같이 많은 날’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만치에 새해가 보입니다.
TV에서 남자의 평균 생존 연령은 77.9세, 여자는 84세로 보도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통계적인 숫자이기에 개인차는 있겠지만 77.9세라는 이야기를 듣고 인생을 4등분 해 보았습니다.
인생의 봄이 탄생으로부터 시작하여 청춘의 피가 끓는 때라면, 여름은 열매를 위해 뙤약볕을 견뎌야 하는 때이며 가을은 열매를 저장해야 할 때입니다. 겨울은 차가움에 몸을 움츠리고 인생을 되돌아보며 건너편에 있는 세계를 준비할 시기입니다. 영원한 동면의 세계이겠지요. 하지만 인간의 수한(壽限)은 신의 영역인지라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김난도 교수의 인생 강의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책에 인생 시계 계산법이 있습니다. 24시간은 1,440분인데 이것을 80년으로 나누면 18분이 됩니다. 1년에 18분씩, 10년에 3시간씩 가는 것이 인생 시계입니다. 그런 방법으로 계산하면 20세는 오전 6시, 40세는 12시, 60세는 오후 6시입니다.
또, 워더헤드라는 종교 심리학자는 인간의 수명의 70으로 잡고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 8시간을 뺀 나머지 16시간을 사람의 인생에 대입하여 나누었습니다. 아침 7시에 일어나고 저녁 11시에 잠자는 것으로 계산하면 갓 태어난 아기는 아침 7시, 10세는 9시 17분, 20세는 오전 11시 34분, 30세는 오후 1시 51분, 40세는 오후 4시 8분, 50세는 저녁 6시 25분, 60세는 밤 8시 42분, 70세는 늦은 밤 11시가 된다는 것입니다.
되돌아보면 인생이란 것이 건강하고 젊었을 때는 언제까지나 팔팔할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스멀스멀 인생의 시장기 같은 것이 느껴질 때면 삶에 대해 성찰(省察)하게 되고, 가끔씩 인생의 사계(四季)를 돌아보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라이너 릴케의 ‘가을  날’이라는 시의 3연입니다.「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릴케도 자신의 동면을 예감하고, 자연의 원숙함과 화려함에 비해 성숙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에 불안을 느끼고 방황하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것 같습니다. 그건 인간의 한계와 내적 고독입니다. 인생은 야간열차 안에서 자기가 내려야 하는 정거장에 이르면 어김없이 내려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 누구도 한번 내렸다가 다시 탑승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사는 모든 사람에게 하루 24시간은 똑같이 주어졌습니다. 픽사베이는 ‘시간은 전 세계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러나 때에 따라 그 길이가 다르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몇 시가 되었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촌음(寸陰)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후회하지 않는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찬바람 부는 겨울은 이우는 계절입니다. 암울하기만 했던 한 해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물방아 돌듯 때가 되면 돌아오고 때가 되면 떠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련만 가쁜 숨을 헐떡거리며 달리는 병신년(丙申年)의 남은 날들이 아쉽기만 합니다. 당신의 시계는 지금 몇 시쯤 달리고 있나요?
‘살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알프레드 디 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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