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 재 희(북멘토)

4.19 혁명 이후 ‘김수영’은 이렇게 자조했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왕만 바꾸어버렸다.” 87항쟁 이후 세계적으로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다음에도 ‘김남주’는 이렇게 읊을 수밖에 없었다. “닫힌 사회의 대중이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지배자들이 연출하는 텔레비전 속의 연극뿐이라고, 그들이 알고 있는 자유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들이 각색한 연극 대본뿐”이라고. 두 시인은 모두 ‘과연 이것이 혁명이었는가’를 되묻고 있다.
2016년 촛불혁명은 어디쯤 와 있는가?
박근혜가 탄핵심판에 회부되고, 특검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한민국에는 ‘이만하면 됐다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탄핵 이후에도 박근혜와 그 공범, 부역자들이 태연하게 살아있다. 박근혜의 공범인 황교안은 ‘제2의 박근혜’ 행세를 한다. 박근혜와 함께 사라져야 할 새누리당이 쪼개지고, 각 정파는 반기문 모셔오기에 열을 올린다. 내내 광장의 뒤편에서 헛발질만 하던 야권역시 탄핵가결 이후 ‘질서 있는 퇴진’으로 돌아섰다. 또다시 그들만의 연극대본을 쓰고 있으며, 벌써부터 개헌론을 비롯한 대선방정식에 취해있다.
촛불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먼저, 촛불은 구체제로부터의 탈피다. 촛불은 박근혜, 최순실에 대한 분풀이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정치권의 권력지형만을 바꾼다고 해서, 몇 가지 정책으로 민주주의의 형식과 얼굴을 가린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분명하게 박근혜와 그 공범부역자들이 처벌되는 순간까지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 더불어 보수적인 야당들에 대한 경계와 압박도 늦춰선 안 된다. 그들만의 리그를 해체하고, 주권을 다시 우리 손으로 되찾아오며, 박정희, 이명박, 박근혜의 유령이 다시는 나타나지 못하도록 단단히 묻어야 한다. 1% 재벌체제에 대한 제재, 검찰 개혁, 언론 개혁 등 각종 사회개혁과제의 제시와 이의 관철을 위한 구체적 운동을 펼쳐야 한다.
두 번째로, 촛불은 완전한 청산 없는 섣부른 개헌론과 대선놀음을 막아야 한다. 최근 탄핵국면과 국정조사 과정에서 법률의 미비점을 이용하는 세력이 우리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그렇다. 개헌 이전에도, 대권놀음 이전에도 국회가 할 일은 많다. 정치개혁을 위한 개헌을 위해서라도 선거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선거제도가 고쳐지지 않으면 대통령제를 하건, 내각제를 하건 특정 세력에 제왕적 권력이 집중되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지금 대선주자들이 말하는 합의민주주의로 가기 위해서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선거에서 얻은 득표수 만큼 의석을 배분받는 제도)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정치가 바뀌기 위해서는 유권자도 바뀌어야 한다. 특히 ‘미래세대’의 의견에 기성 정치권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선거권 연령 하한선이 만 19세인 나라는 한국뿐이며, 전 세계 147개국에서 이미 만 18세까지 선거권을 확대했다. 또한 만 18세가 되면 혼인, 운전면허 취득, 공무원시험 응시 등의 자격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선거 참여만 제한하는 건 전혀 근거가 없는 일이다.
지금 정치권이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선거제도뿐만 아니라 경제민주화(재벌해체),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검찰 개혁), 국민소환제 등 법률 개정만으로 정치개혁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은 많다. 정치권이 정치개혁에 절실한 의지가 있다면 졸속으로 헌법개정을 추진하기보다 법률부터 고치는 것이 더 우선돼야 한다. 개헌의 함정을 조심해야 한다. 개헌의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급작스런 개헌론으로 인해 과거적폐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조바심에서다.
마지막으로, 촛불은 우리 자신에게로도 향해야 한다. 우리안의 박근혜를 몰아내는 일, 우리 안의 온갖 권위의식과 권력의식, 차별과 폭력을 넘어서서 제2의 이명박과 박근혜가 들어설 수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아직도 갈 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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