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희 (북멘토)

현대사회의 선거는 투표율이 그다지 높지 않다. 그래서 대통령과 의회뿐만 아니라 국가의 모든 입법기관들은, 국민 중 매우 적은 수의 투표와 지지로 계속 공직에 남아 있는 것이며, 국가의 운명과 세금의 사용이 국민 중 약 30~40%만의 지지를 받은 사람들의 결정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국민의 절반에 해당하는 국민은 전혀 대의(代議)되지 못하면서도 세금을 납부하고, 통제받으며, 감시당하고, 전쟁의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대의제도와 선거제도의 큰 한계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촛불민심은 박근혜 퇴진, 새누리당 해체 수준을 넘어 특권과 부패로 얼룩진 구체제를 타파하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국회는 그러한 촛불민심을 제대로 담아낼 능력도 의지도 없다. 따라서 사회 전체를 가장 정확하게 반영해 촛불민심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이 절실하다. 그중 하나로 논의되고 있는 것이 ‘추첨제 민회’다. 추첨제 민회란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의 대표자로 구성되는 의회를 말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공직자 대부분을 선거가 아닌 추첨으로 선발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민주주의를 특별한 엘리트의 지배가 아니라 보통 사람의 지배로, 그리고 누구나 동일하게 통치자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는 정치체제로 이해했다. 근대의 탁월한 사상가 몽테스키외와 루소도 같은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은 모두 대표자 선발방법으로는 선거제와 추첨제가 있다고 하면서 선거가 귀족적이라면 추첨은 민주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가 확립된 이후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으로 추앙받으면서 추첨제는 망각의 강으로 흘러가 버렸다.
그러나,「추첨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저자 ‘이지문’은 자유, 평등, 대표성, 통합, 공공선, 합리성, 시민 덕성 등 7가지 점에서 선거제와 비교해 볼 때 추첨제는 다음과 같은 강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자유의 면을 보면, 추첨제는 대표자를 선택하는데 그치는 소극적 자유가 아니라 자기통치의 적극적 자유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선거보다 자유를 증진시킨다. 둘째, 평등의 면을 보면, 피선거권의 평등이라는 형식상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선택될 기회의 실질적 평등 및 배분의 정의 확립이라는 면에서 선거보다 더 평등에 기여한다. 셋째, 대표성의 면을 보면, 특정 사회계층의 과다 또는 과소대표가 아니라 다양한 국민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기술적 대표성 확립을 통한 실질적·상징적 대표성을 제고함으로써 선거보다 더 대표성을 제고한다. 넷째, 통합의 면을 보면, 선거 부정 및 연고주의 조장과 정치부패로 인한 정치 불신이 사라지고, 선거가 조정하는 분열과 정치부패가 현저히 적어진다는 점에서 사회통합을 가져온다. 다섯째, 공공선의 면을 보면, 정당ㆍ지역구ㆍ이익단체의 영향력과 함께 다양성 및 일반 시민의 입장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공공선 추구에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판단과 다양한 대표들의 의회 진입에 따르는 집단지성 발현으로 공공선 추구에 적합하다. 여섯째, 합리성의 면을 보면, 투표자의 비합리적 투표행태 및 선거제도의 유권자 선호 집약 실패, 막대한 선거관리 비용 대신 과학적 사회통계기법으로 사회 전체를 의회에 반영할 수 있으며 선거 제반 비용이 소요되지 않는 면에서의 합리성에 부합한다. 끝으로 시민덕성의 면에서 보면, 정치 참여가 투표참여로 한정되지 않고 직접 참여할 기회를 통한 인간 발달 차원에서 민주적 시민 덕성의 발달을 촉진한다.
추첨제 민회 구상은 어쩌면 시대를 너무 앞서가는 상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한 발칙한 상상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우리의 의사를 국정에 정확하게 반영시키는 것이다. 소수자의 의견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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