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석 천(전 해남동초 교사)

새 책의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은 설레게 마련이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일 역시 설레는 일이다.
연말이나 새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새로운 날이 아니라 어제에 이어지는 오늘과 같은 평범한 날이지만 새해라는 매듭으로 인해 우리는 새로운 소망을 품고 격려와 감사를 나눌 수 있는 것 아니리오.
새해가 밝았다.
세월 사이를 무늬 지으며 흘러가는 것이 삶이다. 시간 사이에 인생이 있나니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도 시간 앞에선 할머니가 되지 않았던가! 이제 2016년은 우리에게 지난 시절로, 그런 때가 있었다는 기억으로만 남았다.
2017년, 닭띠 해의 새 폴더(folder)가 만들어졌다. 한 해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은 인정머리도 없이 우리를 끌고 갈 것이지만 미답(未踏)의 폴더 속에 찰진 삶의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채우고 싶다.
새해가 열리던 첫 시각에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톰슨 시턴이 쓴 「인디언의 복음」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멕시코 어느 시장 구석에 포타 라모라는 늙은 인디언 양파 장수가 있었다. 그는 매일 양파 스무 줄을 매달아 놓고 팔고 있었다. 어느 날 백인 관광객이 다가와 양파 전부를 얼마에 팔겠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포타 라모는 절대 전부를 팔지 않겠다며 이렇게 말한다. “아닙니다. 나는 내 삶을 살려고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이 시장을 사랑합니다. 북적대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붉은 서라피 모포를 좋아합니다. 나는 햇빛을 사랑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종려나무를 사랑합니다. 그 삶을 살기 위해서 여기 이렇게 하루 종일 앉아 양파를 파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에게 이 양파를 몽땅 다 팔아버린다면 내 하루도 그걸로 끝나고 말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사랑하는 것들을 다 잃게 되지요. 그러니 그런 일은 안 할 것입니다.”」
돈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양파를 팔았던 인디언 노인처럼 매일 자신과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시나브로 행복은 스미고 번질 것이다.
프란치스꼬회 박재홍 수사님은 시간은 시간으로 존재하지 않고 노력의 결실로 존재한다. “내가 나무를 심었다면 나이테 안에 존재하고 열심히 운동했다면 건강 안에 존재한다.”고 했다. 결국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관리했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질 것이다.
톨스토이는 ‘세 가지 질문’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다.”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고 해서 당장 어려움이 걷히는 것은 아니다. 태양은 어제의 궤적을 타고 흐를 것이며 바람도 어제의 바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치 불안에 경제 침체가 겹쳐 살림살이가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다.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각의 틀을 바꾸는 일이다. 스무 줄의 양파를 파는 인디언 노인처럼 매일의 삶을 사랑하며 행복지수를 높여가자. 시간은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결실될 것임을 믿고 정유년 장거리 마라톤을 시작해 보자.
라빈드라나드 타고르는 어렸을 적 동트는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새벽마다 동쪽 숲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다가오는 날들은 타고르처럼 생동적이며 밑줄 그을만한 소중한 날들로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새해 인사로 글을 매듭짓는다.
“삼가 새해를 축하드립니다. 피터팬이 영원한 소년이듯 임들도 영원한 소년으로 매일(每日)을  의미 있게 엮어 가시길…”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