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진(해남문화원 전 원장)

1597년 9월16일 우수영 앞바다에서 명량해전이 일어난 해가 정유년인데 420년의 세월이 흘러 2017년, 우린 또 정유년을 맞았다.
이제 2월의 끝자락도 지나 3월 중순이다. 봄소식이 땅 기운에서 피어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나는 주말이면 광주에 가서 병든 아내를 돌보고 주초에 해남으로 내려온다. 3월의 황량한 들판을 차창으로 바라보며 아내와 나의 인생에 대해 사색과 묵상을 한다. 지금의 계절이 나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고 이런 환경에 젖어 행복한 삶을 영위함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옥천면에 다다르면 그곳에서 은거 중인 윤재걸 시인이 생각난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자연과 벗 삼아 산자락 옆 아담스런 와가에서 아름다운 시를 쓰고 글을 쓰고 있겠지 상상을 해 본다.
나는 이런 환경 속에서 사색하는 이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이 분과 벗이 되고자 전에 좋은 매화 분을 하나 소개해 줬다.
자고로 옛 선비들은 매화(梅花)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매화 하면 퇴계 이황이 떠오른다. 퇴계가 현감 재직 시절 동헌 마루 옆에 핀 매화꽃을 보며 시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기생이 그만 반해버려 이후 값비싼 물건을 보내지만 퇴계의 마음은 사지 못했다.
그리하여 기생이 생각해 낸 선물이 매화나무 두 그루였는데 퇴계는 그 선물은 받아들였고 임지를 옮길 때마다 가지고 다니다 은퇴 후 퇴계사당 옆에 심었다는 일화다.
그런데 일 년 전 산이면 매화축제 때 매물로 100여 개의 매화 분재가 나왔는데 그중 하나가 마음에 들어 윤재걸 시인에게 소개했다. 윤재걸 시인이 구입한 매화는 당시 상태가 좋지 않아 관리요령을 상세하게 알려 드렸는데 잘 자라고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매화나무를 소개한 후 후회도 했다. 진정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줘선 안되는데 하며, 그리고 나는 영춘화 한 분을 그분께 드렸다.
봄의 소식을 맨 먼저 알리는 전령은 영춘화이다. 맞이할 영(迎)과 봄 춘(春) 자가 합해 영춘화이다. 모든 꽃들이 자기 몸속에 꽃망울을 숨기고 있을 때 영춘화는 마디마디마다 작은 노란 꽃을 화사하게 피어 황량한 이른 봄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내가 윤재걸 시인에게 보낸 영춘화에는 나만의 비밀이 들어 있다.
그 영춘화의 본래 주인은 정재훈 선생이고 선생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일제강점기 때 광주농고를 졸업한 정선생은 분재 작가이기 전에 인격이 고매한 우리들의 스승이었다. 그때(약 40년 전)는 분재 전성기였다. 분재인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선생은 해남의 분재 수준을 한층 격상시켰으며 해남 분재인들 대부분이 정 선생으로부터 분재 기술을 전수받았다.
어느 해인가는 그분이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선생의 집에는 다소곳이 야매 한 그루가 선비 같이 앉아 있었다. 야매에는 가지 곳곳에 하얀 사리가 깃들어 있어 세월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원래 야매는 꽃잎이 단엽이고 흰색이여야 진품이며 시중에서 구하기도 힘들다.
두 사람이 매화 향기에 취해 동동주 한 잔을 나눴다. 나는 이날 두 번 취했다. 매화 향에 취하고 동동주에 또 취하고.
정 선생은 이승을 떠나셨고 나만 홀로 남았다.
정 선생은 저녁때가 되자 소찬이지만 저녁을 먹고 가라 청했으나 정중하게 사양하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선생은 저에게 분재 한 그루를 선물로 주었는데 그것이 영춘화이다.
윤 선생님! 향매, (迎春化) 잘 키우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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