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영 심(해남행복나눔강사협회 회장)

봄비가 내린다. 진도 팽목항에선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낸다. 3년의 기다림, 3년간 마르지 않았을 유가족 얼굴에 하염없는 눈물이 또 흐른다. 오늘의 봄비도 애처롭다.
3년 전, 너무도 가슴 아팠던 그 날, 대한민국이 울었던 날, 그 세월호가 이제야 얼굴을 내민다. 세월호가 인양된다는 소식에 안도감보단 허탈감이 크다. 그토록 오르기 힘들었던가. 대한민국 곳곳에서 진실을 인양하라는 요구, 세월호보단 진실의 인양이 더 두려웠을까.
봄을 알리는 입춘도 지나고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도 지났다.
봄과 관련된 절기가 뉴스에서 언급돼도 나는 정말 봄이 왔다고 동의하지 못했다.
자연환경을 숱하게 접하는 농촌에서 살아서인지 진달래나 개나리, 벚꽃, 철쭉이 지천에 흐드러지게 필 때 그때야 봄이라고 생각했다. 봄은 그렇게 나의 눈에 찬란한 모습으로 보일 때 진정 봄이었다.
몇 해 전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시 하나를 접하게 됐다. 빌딩 벽면에 걸린 큰 현수막 적힌 시였다. 
박남준 시인의 깨끗한 빗자루였다.
세상의 묵은 때들 적시며 씻겨주려고 / 초롱초롱 환하다 봄비 / 너 지상의 맑고 깨끗한 빗자루 하나
짧은 시였지만 여운은 길게 남았다. 그 이후 봄이 되면 이 시가 자꾸 떠오른다.
봄꽃들이 봄이 왔음을 알아달라고 형형색색으로 꽃을 피워야 그때서야 ‘봄이구나!’ 했었는데 이젠 봄비가 봄을 나지막하게 알리는 또 다른 전령사가 됐다.
왜 눈으로만 봄을 맞이했을까. 눈 너머에 무언의 세상이, 무언의 언어들이 숱하게 있음을, 마음으로, 가슴으로,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 숱하다는 사실, 그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더욱 세상을 깊게 바라볼 수 있고 호흡할 수 있음을 봄비는 그렇게 나를 일깨웠다.
우리의 삶이 그랬다. 때론 지쳐서 또는 너무 익숙해서 천천히 보이는 것, 천천히 변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불쑥 커버린 아이, 희끗희끗 해지는 머리카락, 깊게 패어 버린 주름, 어느새 솟아난 주변의 건물 등을 1월에 멈춰 있는 달력처럼 무감각하게 보내거나 마주한다.
강렬한 봄꽃만이 봄이다고 느꼈던 순간에도 봄비는 조용히 세상을 녹이고 생명을 틔웠다.
우린 무수한 것을 놓치고 산다. 그 모든 것이 자연을 이루는 구성원이고 모든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는 소중한 존재임을 봄비를 통해 배운다.
봄비에는 향기가 묻어있다. 봄의 생기가 묻어있다. 여름비처럼 사납지도 않고 겨울비처럼 처량하지도 않다. 조용한 향기와 생기로 자연에 생명을 심어주는 봄비. 닮고 싶다.
봄비가 더 내렸으면 한다. 메마른 땅을 적셔주고, 거리의 성난 화를 잠재웠으면 좋겠다. 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의 눈물이 봄비와 오버랩 된다.
3년 동안 세월호는 나의 가슴 속에 어느 정도 자리하고 있었나. 그 슬픔이 너무도 커 망각의 세계로 자꾸 밀어내지는 않았을까. 봄비 속에서 맞이한 세월호, 유가족의 눈물이 봄비가 됐다.
봄비가 일깨워준 가치, 주변에 눈을 돌린다. 유가족의 눈물이 나의 눈물이 된다.
그렇게 봄비는 나에게 다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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