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는 다른 존재이다. 그러기에 너와 나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주체와 객체 사이의 얇은 막을 프랑스의 화가 마르셀 뒤샹은 ‘앵프라맹스’라고 불렀다. 그런데 너와 나 사이에 무언가가 흐르고 있다면 너와 나는 연결된 존재요 너와 나 사이의 공간은 빈 것만은 아니다.

너와 나 사이에 거리가 있지만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 사이, 그것을 ‘우리’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나보다는 우리가 되고 싶어 한다. 너와 내가 우리가 될 때 고통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 우리라는 관계에선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되고 즐거움은 나누면 배가 된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같은 대규모 악단에서는 현악기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활을 움직여대는 악기를 연주하는 단원이 있는 반면 심벌즈처럼 어쩌다 한 번씩 소리를 내는 단원도 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고 우리이다. 연주자는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 사이에도 다른 연주자들과 마찬가지로 귀를 곤두세우고 지휘자를 바라보며 무음의 연주를 한다. 바이올린이면 어떻고 플루트면 어떠랴! 바순이면 어떻고 팀파니면 어떠랴! 중요한 건 우리라는 연결고리이다.

단원 모두는 연주하는 내내 너와 나의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너와 내가 연결고리를 갖는 것 그걸 통(通)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통(通)하면 ‘우리’가 되고 편안해진다.

자꾸 만나는 사람들 사이도 그렇다. 만남은 관계를 형성하고 좋은 관계는 통(通)하게 되고 통(通)하면 편안함을 낳는다.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님의 ‘행복통조림’이라는 책에 이런 우스운 내용이 들어있다.

「흥부는 배가 고팠다. 그런데 어디선가 밥 냄새가 난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찾아 나선다. 마침 형수가 밥을 퍼 담고 있었다. 형수는 흥부가 가까이 다가온 것을 알지 못한다.

마른기침을 한 후 흥부 왈
“형수님, 저, 흥분돼(데)요”
“형수님, 저, 흥분돼(데)요”

당황한 형수, 푸던 밥주걱으로 흥부의 귀싸대기를 올리고 만다.」

흥부가 형수한테 귀싸대기를 맞은 진짜 이유가 뭘까? 서로 말이 통(通)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래서 통(通)하지 않으면 통(痛)한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통(通)하지 않아서 통(痛)한 일은 허다하다.

심리학에서는 서로 통하는 관계, 신뢰관계를 라포르(레포, rapport)라고 한다. 이는 두 사람 사이의 공감적인 인간관계 또는 그 친밀도 특히 치료자와 환자 사이의 관계를 말하나 일반적으로 관계 형성을 의미한다.

인간관계에서 ‘라포르’ 형성은 매우 중요하다.  ‘라포르’가 형성되지 않으면 곧 통(通)하지 않으면 통(痛)만 남는다.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의 지휘자가 지휘를 할 때 단원들은 지휘자의 지휘봉이나 지휘자의 손동작을 보고 지휘자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어 낸다. 지휘봉이나 손에서 나오는 작은 동작으로 파트간의 균형(Balance), 정확한 음정, 가사표현, 소리의 강약, 소리의 동질화 등을 지시받고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 이전에 지휘자와 단원들 간의 ‘라포르’가 형성되지 않으면 좋은 음악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지휘자는 단원들과의 ‘라포르’ 형성을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하고 마침내 지휘자의 손짓과 눈짓, 얼굴 표정으로도 지휘자의 요구사항을 읽어낼 수가 있게 된다.

어디 오케스트라나 합창단뿐이랴!

지난 시절 우리는 통(通)하지 않아 통(痛)했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통(通)하지 않아 국민들이 통(痛)하고 수많은 학생들이 희생됐던 시절이 있었다. 통(通)하지 않아 촛불을 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촛불을 든 이들은 상대방의 촛불을 보며 통(通)했고 하나의 커다란 촛불덩어리를 이루었다.
지금도 어디선가 촛불을 든 이들이 모이고 있다면 그건 통(痛) 때문이리라.

누구든, 어떤 조직이나 사회건 간에 지휘봉을 잡은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지휘자다운 지휘자가 되려면 먼저 ‘라포르’를 형성하라. 어느 누가 지휘봉을 잡았든 지간에 마음을 열고 쓴 소리, 단소리를 조화시켜 마음 넉넉하게 들을 수 있다면 너와 나는 연결된 존재인 우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무음의 연주자들, 기다리고 있는 연주자들까지 바라보며 눈빛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무음의 연주자들도 단원이기 때문이다.

잘 다듬어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단원들처럼 통(通)함이 있는 행복한 사회를 기대한다.

통(通)하지 않으면 통(痛)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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