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교사)

 어느 날 헤밍웨이의 문하생이 되고 싶다며 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저도 선생님처럼 대작을 쓰고 싶습니다. 그 비결을 저에게 알려주십시오.”
그 청년은 사뭇 진지한 태도로 말을 했지만 헤밍웨이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헤밍웨이는 창문을 열고 봄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정원을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답답해진 청년은 다시 부탁을 했습니다.
헤밍웨이는 책상으로 가서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청년은 실망한 눈빛이었습니다.
그때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정원의 꽃들의 내음을 글로 쓰고 있네. 처음부터 대작을 쓰고자 하는 것은 만용일 뿐일세. 그저 자신의 감정을 생생하게 써보게. 한 장 두 장, 수천 장의 원고지를 찢고 쓰기를 반복하면 자신도 모르게 대작이 탄생되는 것일세”
사람들은 보통 그 사람의 현재(결과)만을 봅니다. 그러나 성공한 이들에게는 ‘숨겨진 시간’이 있습니다. 헤밍웨이의 숨겨진 시간은 원고지를 수천 번 찢고 쓰는 시간이었습니다.
야구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기까지, 김연아가 피겨의 여왕이 되기까지 반드시 숨겨진 시간이 있습니다.
저는 글 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글을 씁니다. 그렇게 써놓은 글이 만여 편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제 글을 보면 볼수록 한심하기만 합니다. ‘숨겨진 시간’이 아직도 모자란 거죠.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에게도 숨겨진 시간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도 몇 아이들을 남겨놓고 개별지도를 합니다. 받아 올림이 있는 1위수+1위수의 덧셈을 하지 못한 아이도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교실을 떠난 지 두 시간이 되어갑니다. 
앎이란 체험적인 것이라서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담임의 도움도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칼 로저스가 이렇게 말했죠.
‘나는 사람이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내가 아는 것은 단 한 가지 배우려는 사람만이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아이들에게도 분명 숨겨진 시간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숨겨진 시간이 적은 아이들일수록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시간을 헛되이 보낸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저절로 되는 것은 없습니다.
현재는 숨겨진 시간이라는 과거의 열매입니다.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