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천(전 교사)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 후유증 치료를 위해 가끔 장흥의 모처(某處)를 찾습니다. 
어느 날의 일입니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하버드대학교 교육심리학 교수 하워드 가드너가 지은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s)」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다중지능이라는 책은 교육학 심리학 서적이고 내용이 상당히 딱딱해서 일반인들이 즐겨 읽을 만한 책은 아닙니다. 그런데, 제 바로 옆에 칠순은 넘었겠다 싶은 촌로(村老)가 자꾸 제가 읽고 있는 책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얼핏 마주친 노옹(老翁)의 눈빛이 예사롭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엔 제 옆에 놓여있는 신문을 넘어다보는 줄 알았는데 분명 제가 읽고 있는 책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신문 드릴까요?”
“뇌가 발달하려면 시냅스가 발달해야 하는데…” 노인(老人)이 건넨 말은 ‘뇌 이론’이었습니다.
“뇌 이론을 아시네요”
말을 걸어오신 노인이 뇌에 대해 상당한 식견이 있으신 것 같아 뉴런, 시냅스, 부로카 영역, 베르니케 영역, 그리고 뇌 발달에 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었습니다. 
말은 거울 같아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상대방의 내공(內功)이나 갖추어짐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마련입니다. 노인과 나눈 잠깐의 대화에서 범상치 않은 내공과 진중함이 느껴졌습니다. 
문명사회의 변방으로 여겨지는 아프리카 속담에 이런 말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답니다.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지성이었던 ‘아마두 함파테바’가 1962년 유네스코 연설에서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서재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미개한 사회로 생각되는 아프리카에서 노인들이 어떤 정신적 대우를 받는지 쉽게 알 수 있는 말들입니다. 
어디 아프리카뿐이겠습니까? 우리사회 역시 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도서관과 같은 보물단지입니다. 노인들에게는 젊은이들이 소유하지 못한 과거의 역사와 기억들이 있습니다. 노인들은 지식도 기술도 아닌 것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이끼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경험이라는 무형의 자산입니다. 까뮈의 말처럼 경험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겪어내는 것이기 때문이죠.
요즘 이웃 일본에선 노인들에 대해 '혐로사회(嫌老社會)' '약육노식(若肉老食)'이라는 말이 등장했답니다. 하지만 저는 노인을 ‘Know인’이라고 풀이하고 싶습니다. 주관적인 해석을 한다면 ‘Know인’이란 작은 도서관이죠.
지난해 해남우리신문이 주관한 ‘할머니 옛이야기 한마당’과 마당극 공연이 열렸습니다. 나이에 밀려 ‘구경꾼’이 된 세월이 긴지라 무대에 선다는 것이 멋쩍고 생경하기도 하련만 공연장에서의 할머니들에게서 생기(生氣)가 보였습니다. 
엊그제는 ‘70~80대 할머니들의 봉사…더 보람’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실렸던, 몸이 편찮으신 어른들을 찾아가 옛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두 분 노인의 이야기가 ‘삶의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노인들의 이런 활동을 보며 고령화 시대의 복지정책 방향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도 또한 매우 빠릅니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2040년에는 인구의 40%가 노인일 거라고 합니다. 
다양한 사회문제 중 노인문제는 노인 인구의 비율만큼 중대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습니다.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지금 행복한 노후를 위해 경제적인 빈곤 문제 해결과 더불어 ‘Know인’들이 가진 자산을 활용해 삶의 가치를 느끼며 살 수 있도록 ‘무엇을’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 지금 고민할 때입니다. 
무형의 자산을 가진 ‘Know인’들이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때 ‘Know인’은 우리사회의 도서관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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