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교육 홈페이지 참여마당에 ‘푸른 숲’이라는 닉네임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습니다.
‘푸른 숲’님의 글을 그대로 옮깁니다.
「핵가족화와 아이들의 인성교육에 대한 건의사항이오니 교육당국에 대해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요즘은 어느 집이나 자녀가 결혼하면 분가하여 따로 삽니다.
집집마다 지나친 사교육에 실력은 좋아지겠지만 인성교육은 심각합니다. 자녀를 적게 두어 제 자식 귀한 줄만 알았지 정말 귀중한 게 인성이란 걸 모르고 사교육에만 정성과 경비를 쏟습니다. 방학을 해도 학원에 4~5개를 다니자니 애들도 바쁩니다. 옛날에는 방학을 하면 친가나 외갓집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가서 함께 보내다 가곤 했습니다.
요즘 할아버지 할머니는 너무 외롭습니다. 손주들 얼굴보기도 어렵고 (기껏해야 명절 때 와서 하룻밤 자고 외가에 가서 하룻밤 자면 돌아가는 정도) 전화로 목소리나 들어볼까 해도 학원가는 시간일까봐 전화도 잘 못하고.
그래서 교육당국에 건의 드려봅니다.
1. 아이들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은 할아버지 할머니께 문안 전화 드리기
2. 방학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놀러가서 최소한 3일 이상 보내기
3. 학부모도 자신들의 부모님께 자주 문안 전화 드리기
(3번 사항은 부끄러운 사항입니다. 제가 자식교육을 잘못시킨 결과이니 누굴 원망 하겠습니까?)
나이가 들어 두 내외가 살면서 손주들 보는 게 큰 즐거움인데 겨우 폰으로 보내주는 사진이나 들여다보며, 목소리도 듣기 어렵다니….
학교에서 가끔 교육을 시켜주셨으면 해서 푸념을 해 보았습니다.」
글을 올린 날짜는 어버이날 다음 날인 5월 9일이었습니다. 어버이날 다음 날에 글을 올려야만 했던 할아버지의 심경, 글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고 삼켜 버렸을 구구절절한 사연을 그려 보았습니다.
지난 날, 자녀에게 쏟았던 사랑은 흔적마저 사라지고 외로움이라는 통증만 남은 할아버지의 가슴을 쥐어짜낸 이야기, 할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공공 게시판에 올리기까지 무던히 고심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작금의 노인들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은 동병상련의 가슴으로 이 글을 올리셨을 것 같습니다.
요즈음 외롭지 않은 노인들이 얼마나 될까요? 외로움은 무서운 적과 같은데 말입니다. 변화의 물살에 휩싸여 정체성을 상실해 가는 아노미 현상이 우리 사회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 한 가지는 부모의 사랑입니다.
‘열 명의 자식을 양육하는 아버지가 있으나, 한 사람의 아버지를 부양하지 않는 열 명의 자식도 있다’는 법구경(法句經)의 옛말이 새삼스럽습니다. 권효가(勸孝歌)에 나오는 말들을 되새김질해 봅니다.
‘내 자식이 장난치면 싱글벙글 웃으면서 부모님이 훈계하면 듣기 싫다고 외면하지 않았는가?’, ‘자녀들의 오줌똥은 손으로 주무르면서 부모님이 흘린 침은 더럽다고 멀리하지 않았는가?’, ‘개가 병들었을 때는 가축병원으로 달려가지만 부모님이 쓰러지면 노환이라고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는가?’, ‘자식과 마누라와는 외식도 자주 하면서 늙은 부모는 나 몰라라 하지 않았는가?’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항상 늦습니다. 제가 겪어보니 부모님이 무지개다리를 건너가신 후에는 그림자도 그립습니다.
공자가 입교편(立敎篇)에서 한 말입니다.
‘子曰(자왈), 立身有義(입신유의)하니 而孝爲本(이효위본)이요.’
입신의 근본은 효도이다.
‘푸른숲’님의 호소는 ‘오직 성적’을 향한 몸부림이 낳은 교육의 모순됨을 드러내는 단면이 아닐는지요?
‘푸른 숲’할아버님께 정호승 시인의 글을 인용하여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중략)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여름방학이 시작됩니다. 이 여름엔 ‘푸른숲’님의 바람이 성취되길 두 손 모읍니다.
저의 거친 글은 제 자신을 돌아보는 글임을 해서(海恕)해 주십시오.
해남우리신문
5430234@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