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천(전 교사)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석 달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변화가 피부로 느껴집니다. 표류하던 나라가 가까스로 방향타를 잡은 듯합니다. 비정상을 정상화하고자 하는 노력, 국민과 소통하려는 모습이 이전 정부와는 확실히 다릅니다. 
청와대 앞 도로가 시민들에게 개방되었습니다. 대통령이 아닌 이웃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모습이 스크린을 채웁니다. 
한편, 우려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나라를 이끌고 나갈만한 인재가 없습니다. 정책 발표는 성급합니다. 여야의 대립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각계각층의 요구는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안으로는 경기 침체, 밖으로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부대끼는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으니 이래저래 난국입니다.
요나라 때의 일입니다.
요 임금이 민심을 살펴보려고 평복을 하고 거리로 나섰다가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우리 백성을 살게 하는 것은 모두가 임금의 지극함 아닌 것이 없다.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임금이 정해준 대로 살아가네.’ ‘강구요(康衢謠)’라고 일컬어지는 아이들이 불렀던 동요는 요임금 때의 태평성세를 잘 표현한 노래죠.
임금은 다시 발길을 옮겼는데 한 노인이 길가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한 손으로는 배를 두들기고 또 한 손으로는 땅바닥을 치며 장단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해가 뜨면 일하고(日出而作), 해가 지면 쉬고(日入而息),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鑿井而飮), 밭을 갈아서 먹으니(耕田而食), 제왕의 힘인들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帝力干我何有哉).
이는 국민이 정치의 고마움을 알게 하는 정치보다는 그것을 전혀 느끼기조차 못하게 하는 정치가 진실로 위대한 정치라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 노래를 들은 요임금은 크게 만족하여 “과연 태평세월이로구나” 하였다 합니다. 
물론, 다원화된 욕구와 얽히고설킨 문제가 산더미 같은 오늘날과 상고시대(上古時代)를 비교할 순 없겠지요. 하지만 정치란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격앙가의 내용처럼 시나브로 국민이 행복해지는 정치가 이상적인 정치일 것입니다. 
국민은 어느 정부이건 간에 그 정부가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한 정부의 성공은 국민 행복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한데, 국민의 바람과는 달리 정치권의 볼썽사나운 모습은 여전합니다. 새 정부가 국가기반을 구축하고 동력을 얻어 힘있게 일해야 할 텐데 협치나 협조나 상생의 모습은 사라지고 정략적 몽니만 부리는 모양새가 역력합니다. 
국민 행복을 위해 달음질해도 어려운 난국인데 국민을 위한다는 너절한 말휘갑은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말잔치거나 주도면밀한 정치적 계산이겠지요. 지금은 당리당략에 붙잡혀 있을 때가 아닙니다. 모름지기 정치란 이충무공의 말처럼 국민을 향해야 하는 것이죠. 
공자는 “말재주로 나라와 집안을 끝없이 뒤엎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정치란 국민의 지지를 먹고 사는 법인데, 쯧쯧 안타깝습니다.  
돌아보면 신이 우리나라를 지극히 사랑했던 모양입니다. 국정농단으로 일컬어지는 G와 S의 공동 작품 덕분에 국민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고조(高調)되고 정권교체를 이뤘습니다. 새 정부를 세운 것은 정치인도 기업인도 아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절박감을 지닌 평범한 국민들의 욕구였습니다. 국민은 지금도 어려운 정치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촛불을 들었던 국민의 가슴과 지켜보는 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MBC 드라마 「군주」를 보다가 대사 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책임지지 않은 권력은 전쟁보다 무서운 것이다.’ 
새 정부는 구 정권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책임 있는 정치를 구현(具現)하고 국민의 가슴을 어루만져 살만한 나라를 만들어 주시기를, 부디 정치권이 제정신을 차리기를 부탁드립니다. 정권이 마무리되는 그 날에는 격앙가가 불리길 바라며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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