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천(전 교사)

 태양이 극성스럽다. 비라도 시원히 내려 열기를 잠시 식혀주면 좋으련만 어찌 된 일인지 비가 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실내 온도가 30도 이상이니 가마솥더위라는 말 이 딱 어울릴 지경이다. 그렇다고 서민 형편에 종일 에어컨을 켤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한낮의 더위는 피부 사이로 파고드는 느낌이다.
피서(避暑)철이다. 이 시기를 휴가(休暇)철이라고도 한다. 피서와 휴가! 그러고 보면 요즘의 피서란 더위를 피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지친 심신을 달래고 안정을 되찾는 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선풍기도 없고 냉방기도 없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더위를 어떻게 이겨냈을까?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이 쓴 ‘소서팔사(消暑八事)’에는 더위를 식힐 8가지 피서법이 소개되어 있다. 
그 내용인 즉 이렇다. 
솔밭에서 활쏘기,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타기, 넓은 정각에서 투호하기,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숲속에서 매미소리 듣기, 비 오는 날 한시 짓기, 달밤에 개울가에서 발 씻기. 이런 활동들을 하며 더위를 피했다고 소개되어 있다. 
덥다고 집에만 있지 말고 적당한 운동을 할 것이며 자연을 벗 삼아 즐기고,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유지하고 단장하는 일로 더위를 이겼다.
어렸을 적 기억으론 할아버지께서는 더운 날에는 찬물에 발을 담그셨고 우물가에서 등목을 하셨다. 느티나무 아래 평상을 놓아두고 마을 어른들과 한담을 하며 더위를 피했다. 밤이면 식구들이 모여 모깃불을 피워놓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과 은하수의 움직임을 바라보곤 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요즘 피서법은 약간 호들갑스럽다. 너도나도 이름 있는 장소나 골짜기를 찾다 보니 사람도 자연도 몸살을 앓는다. 가는 곳마다 발 디딜 틈이 없고 쓰레기가 넘쳐난다. 
이런 피서법은 어떨까? 피서(披書) 말이다. (책 읽기를 일반적으로 독서(讀書)라고 말하지만 간서(看書) 혹은 피서(披書) 또한 ‘책을 읽는다’는 뜻이다.)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책을 벗 삼아 열기를 식히는 것도 좋은 피서법일 것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책 읽기로 여름을 이겨냈다는 기록들이 많이 있다. 
오늘의 시대가 좀 수상하다. 웰빙(well-being)과 힐링(healing)을 외치고 거리엔 온갖 클리닉과 행복 안내 이정표들이 즐비하다. 남녀를 무론 하고 몸매를 가꾸는 일에는 관심이 많다. 
눈만 뜨고 나면 새로운 커피숍이나 음식점이 생겨나는 데 비해 책방은 줄어들고 있단다. 과거엔 거리에서 손에 책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요즘 그런 모습은 보기가 힘들다. 
황폐해져 가는 내면의 힐링, 내면의 뜰을 일구는 책 읽기는 외면당하고 있는 느낌이다. 
굳이 책을 읽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디스플레이 장치만으로도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얄팍한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이니 책 읽기의 가치는 퇴색한 듯하다. 
책은 사유를 영글게 한다. 
또, 책장을 넘길 때 사각거리는 소리는 얼마나 듣기 좋은 소리인가!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혜시(惠施)라는 사상가는 “남자가 태어나서 지식을 갖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던가 싶다. 스스로를 책 읽는 바보 곧 ‘간서치(看書痴)’라 말한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李德懋)는 오로지 책 읽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겨, 춥거나 덥거나 주리거나 병들거나 전연 알지를 못하였다고 한다. 
한여름에 책 읽기라니, 무슨 고루한 이야기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다. 하지만 책 읽기는 삶에 무늬를 놓는 일이다. 
내가 읽은 책들은 나를 이루는 성분이 되고 책을 읽은 만큼 마음에 놓아지는 무늬도 아름다워질 것이다.  
여름은 글자가 여무는 계절이다. 몽테뉴의 명언처럼 가장 싼 값으로 가장 오랫동안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 바로 책이다. 
더위에 쫓기는 것보다 책의 그늘에 잠시 쉬었다 나오면 여름의 열기가 조금은 누그러져 있지 않을까.
바캉스(vacance) 대신에 북캉스(book+vacance)! 피서(披書)로 피서(避暑)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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