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자(편집국장)

 유럽에선 개인 집 앞 나무도, 도로변 개인소유 숲도 모두 경관을 아름답게 구성하는 공적 자산으로 바라본다.
해남YMCA 소유인 은행나무의 상태가 좋지 않자 한때 해남군이 예산을 투입해 관리한 예가 있다. 사적 소유가 아닌 해남읍을 아름답게 하는 공적 경관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도로변에 서 있는 나무 하나. 숲과 조형물, 들녘 등은 모두 경관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하나로 묶여지면서 지역마다 나름의 특징적인 경관을 이룬다.
식재된 가로수마저 관리할 예산이 부족한 해남군, 가로경관에 대한 인식 전환이 우선이다. 농촌의 가로경관은 인위적 요소의 배제에서 시작된다. 도로변에서 바라보는 붉은 황토밭과 들녘의 능선, 그 너머 산의 스카이라인이 가로경관이라는 인식의 필요성이다. 
도로가 생기거나 확장되면 식재되는 가로수, 비워야 할 곳에 채우려는 욕구는 오히려 경관을 망친다. 

 비움과 여백은 사람들에게 여유를 준다. 그 비움과 여백은 사람들마다 각자의 상상력으로 여유로 채우게 해야 한다.
들녘을 채운 하얀 깨꽃과 붉은 고추밭, 얼마나 아름다운 가로경관인가. 도로변 코스모스도 아름답지만 부지런한 농민들에 의해 채워진 도로변 깨꽃 가로수와 콩, 옥수수는 또 다른 맛을 주는 가로경관이다.
옥천 팔산 앞 들녘과 대산마을 방면 도로변에서 만나는 가로수, 왜 식재했을까. 빽빽이 나무가 들어선 산 앞에도 가로수가 서 있다. 한때 도로변이 비어 있으면 가로수로 채우려 했다. 
가로수는 경관 디자인에 속한다. 도화지에 그린 그림이 아닌 열려 있는 그림이며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소유할 수 있는 그림이다. 
그러한 그림을 구도와 색을 무시한 채 그린다는 것은 위험하다. 작가의 눈높이와 깊이감, 철학적 사유의 힘에 의해 그림의 평가가 달라지듯 가로수도 공간감각과 디자인적 눈이 필요하다. 
하물며 특정한 곳을 가야 감상할 수 있는 그림과 달리 가로수는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그림이기에 더 높은 디자인적 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선진 지자체들이 경관디자인계를 두고 통일적인 경관정책을 수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남은 변화와 리듬이 있는 경관으로 알려져 있다. 산이방면의 경관은 밭의 둥그런 능선과 들녘의 다양한 색이 으뜸으로 꼽힌다. 전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운 도로이기에 관광도로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산이면이 둥그런 능선이라면 화산면과 현산면의 들녘은 시원스럽다. 또 산과 촌락이 도로변으로부터 적당한 거리에 있어 시원하면서도 정겹다. 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넓은 들녘과 황토빛, 분명 해남 가로경관의 자랑이다. 

 이것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이 해남군의 가로경관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모가 푸릇푸릇 자라는 들녘 앞에 푸른 나무 가로수를 더하는 것은 색의 남발이다. 겨울의 황량한 들판 앞에 잎이 진 가로수의 모습은 황량함을 넘어 황폐함을 준다.
우리의 자랑을 가로수로 차폐시키지 말자. 농부들이 가꾸고 자연이 준 그 자체가 해남을 아름답게 하는 가로수라는 인식을 갖자.
동양화의 특징 중 하나가 여백이다. 여백과 비움은 동양인의 정서이자 문화이다. 도로를 비우자. 도심 상가의 간판을 정리하고 도로변에 무질서하게 서 있는 시설물들을 제거하려는 것도 모두 비움이 주는 여유를 찾기 위해서다. 
도로변에 무질서하게 서 있는 가로수가 아닌, 시원한 들녘을 바라볼 기회를 갖고 싶다. 그 권리를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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