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넘도록 80% 안팎의 긍정여론을 유지하고 있다. 박근혜 불통정부 하에서 시달리던 때를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변화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리더의 역할이 크긴 큰가 보다.
지방자치시대엔 자치단체장의 역할이 지대하다. 자원이 빈약한 지역이 자치단체장 한 사람으로 인해 크게 융성한 예들이 많다. 반대로 자원이 많은 지역이 못된 자치단체장 때문에 도탄에 빠지기도 한다.
해남은 어떤가? 농업환경이 빼어나고, 문화관광자원이 출중한 자원부촌이 불량정치에 발목 잡힌 형국이다. 해남과 비교가 안 되던 인근 군의 변화를 보자면 부러움을 넘어 화가 치민다.
그렇다면 농어촌군수에게 달린 순기능과 역기능은 어떤가? 오늘날 농어촌 군수의 권한은 가히 제왕적이다. 해남보다 인구가 5배 이상 되는 광주의 구청장들과 해남군수의 권한을 비교해 보면 도리어 해남군수의 권한이 3~5배 정도 크다. 광주의 구청들은 중앙정부로부터 예산집행의 꼬리표가 달려온 인건비와 복지예산 등이 주를 이루고 있어 구청장의 실질권한이 크지 않다. 그러나 해남군수는 농수산, 산림, 지역개발, 건설 등 사업예산이 많기 때문에 도시 구청장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권한이 크다.
예산 집행구조를 들여다보면 실감이 난다. 농어촌군은 중앙정부로부터 내려온 꼬리표 예산이 두 가지로 나뉜다. 공무원 월급이나 복지예산은 쓸 곳까지 정해 온 경직된 꼬리표 예산이다. 농수산, 산림, 지역개발, 건설 등 사업예산은 쓰임새만 정해온 느슨한 꼬리표 예산이다.
따라서 농어촌군수들은 느슨한 꼬리표예산인 사업예산 집행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 사업예산은 군의회가 견제하기엔 역부족이다.
이 예산을 칼질하면 중앙에서 오는 돈이 깎이기 때문에 군의원들이 손대기 어렵다. 그렇다고 지역언론과 시민단체가 사업예산의 자원배분 과정을 견제하기도 어려운 구조다. 지방교부세, 지방세수 등 자율재정을 털어 중앙사업(메칭펀드)을 타오면 이 또한 군수의 권한 범위에 들게 된다. 농어촌군수들은 별다른 견제를 받지 않은 채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렇듯 군수가 엄청난 인력과 예산집행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양날의 칼에 비유된다. 군수가 권한을 잘 쓰면 지역이 융성해 지지만 권한을 잘못 쓰면 지역에 큰 해악을 끼친다. 제왕적 군수들은 토목행정과 선심성행정을 즐긴다.
이는 행정집행이 용이하면서 가시적 성과를 나타낼 수 있고, 이런저런 견제를 피하면서 권력 맛을 누리는 일석삼조의 방식이다. 제왕적 군수는 군 재정을 눈먼 돈으로 버려지게 만들고, 고장의 기운을 마이너스모드로 흐르게 한다.
그러나 혁신적군수는 이와 반대방향을 지향한다. 농수산과 관광자원들에다 지역특성을 옷 입히고 연동시켜 실질가치를 크게 높인다. 지역에서 돈이 돌도록 하고, 겉치레 토목사업보단 복지, 문화, 교육 등 주민 삶의 질에 맞닿은 행정을 펼친다. 지역에 내재된 희망거리들을 찾아내고, 군예산이 희망거리를 부풀리는 이스트가 되도록 한다. 흩어진 고장의 자원들을 모아 상생기능을 도모한다. 재촌 희망일꾼을 키우고, 공무원들의 신바람을 불러일으켜 지역에 플러스 모드가 흐르도록 한다.
이젠 본격적인 지방분권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내년엔 헌법이 지방분권형으로 바뀔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지방분권시대엔 지역행정의 기능과 역할이 크게 바뀌게 된다. 중앙집권시대엔 중앙의 자원을 많이 타오는 게 군수의 중요한 역할이었지만 지방분권시대엔 지역이 품고 있는 특장점과 주민들의 창의역량을 모아 장작을 쌓고, 혁신의 밑불을 지르는 역할을 해야 한다. 때문에 지방분권시대엔 과거의 관행에 묶인 지역과 스스로 혁신하는 지역의 편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냉정히 말하자면 해남은 지금 잘 나가는 군보다 10년 가까이 뒤쳐 있다. 해남의 혁신동력은 멈춰 서 있다. 그런데도 “다음엔 임기 채우는 군수만 뽑으면 되겠제?”라는 소리도 들린다. 참 한가한 말이다. 해남이 타 지역에 크게 뒤쳐 있고, 주민들 가슴이 멍들어 있기에 해남을 어서 회생시켜야 하지 않는가? 지역 간 경쟁이 본격화되는 지방분권시대를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하지 않는가?
요즘 행사장마다 군수선거에 나서겠다는 분들이 눈에 띈다. 그분들이 권력에 눈이 어두워 제왕적군수가 되려는 사람인지, 해남을 되살리기 위한 혁신적 군수가 되려는 사람인지 가려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분들이 손 내밀면 잡고 물어보시라. 뭐 한디 군수 할라 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