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교사

 아내와 시골길을 갔습니다.
“여보! 올해는 깨 농사가 참 잘됐네.”
“할머니들이 그러시던데 오월 공달이 들면 깨가 잘된다는 데, 올해 오월 공달이 들었다고 합띠다.” (윤달을 덤달, 여번달, 공달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래? 할머니들은 으뜨케 그런 것을 다 아까이.”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뭄이 들지 비가 올지도 다 압띠다.”
“옴메! 그라믄 할머니들이 기상 관측 위성보다 낫네이.”
“경험했응께 알겄지요.”
내가 어렸을 적 할머니께서도 그런 혼잣말을 많이 하셨습니다.
“아따, 서리가 많이 내린 것을 보니 날이 따뜻하겠구만.”

 당시에는 문맹자가 많았습니다. 글씨를 읽거나 쓸 수 없어 군대 간 아들의 편지를 들고 집으로 찾아오곤 했으니까요. 기상관측위성을 쏘아 올리고 슈퍼컴퓨터라는 첨단 기기로 일기예보를 하는 요즘에도 예보가 자주 빗나가는데 그 시절에 비가 오겠다던 지, 날씨가 좋겠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을까요? 노인들에게는 젊은이에게는 없는, 아침의 서리와 해 질 녘의 장엄한 노을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밝은 속눈을 하나 더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요. 세상의 이치를 아는 것은 머리에 든 지식이 아니라 가슴에 녹아 있는 경험일 것입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인이었던 프랜시스 베이컨은 ‘경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지식은 경험을 통해서, 직접 관찰하고 실험하면서 쌓여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요, 노인들은 문헌적 지식도 기술도 아닌 것을 덤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월이 풍화되어 가슴에 이끼처럼 끼어 있는 경험입니다. 카뮈(Albert Camus)의 말처럼 경험은 창조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겪어내는 것이기에 경험이야말로 산지식이며 지혜인 셈이죠. 그래서 서양 속담에 ‘나이가 책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는 것이겠지요.

 중국에 “노마식도(老馬識途/老馬識道)”란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노마지지(老馬之智)라고도 하지요. 직역하면 “늙은 말이 길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에 제나라의 환공이 있었습니다. 환공이 고죽국(孤竹國)을 치러 나섰습니다. 봄에 시작한 전쟁은 겨울이 돼서야 끝나게 되었고, 환공은 군사를 철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적진 깊숙이 들어와 있어서 나오는 탓에 제나라 군사들은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때 환공을 보좌하던 명재상 관중이 지혜를 냈습니다. 
관중은 “전쟁에 경험이 많은 늙은 말을 모으라”고 했습니다. 경험이 많은 늙은 말을 앞세우자, 말들은 자기들의 경험으로 수풀을 해치며 길을 찾아냈고 이렇게 해서 환공과 제나라 군사들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노마식도’란 경험 많은 이들의 지혜라는 말로 쓰입니다. 평상시에는 나이 듦이 낡은 것쯤으로 여겨지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나이 듦이 지혜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초로 마우스를 개발한 컴퓨터 천재 워즈니악이 제주도의 어떤 여고생에게 “어른들의 말씀을 새겨들으세요. 그들은 오랫동안 이 세상이 돌아가도록 다른 사람들과 중요한 일을 해온 멘토들입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노인들은 앱(application)이 뭔지 트위터가 뭔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카카오톡을 활용하지 못해도 그분들만이 소유한 아주 소중한 재산을 가지고 있으니 경험이라는 것이지요.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무심한 세월에 실려 젊음은 어쩔 수 없이 풍화되어 갑니다. 등이 물음표처럼 굽기도 하고 얼굴에 수세미 껍질처럼 자글자글한 주름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요. 
내년이면 전 국민 중 14%가 노인이고 8년 후면 5명 중 1명이 노인이랍니다. 해남군의 경우 2016년 9월 현재 전체 인구의 28.5%입니다. 
노인은 누구일까요? 노마식도(老馬識途)! 바로 지혜로 세상을 이끌 수 있는 멘토들입니다.
주변의 노인들을 볼 때마다 ‘노마식도’라는 고사성어를 기억한다면 노인에 대한 관심과 존경심이 살아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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