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0을 훌쩍 넘기고 결혼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나는 스물일곱, 남들보다 아주 조금 더 일찍 결혼을 하였다. 계획 없는 임신이었지만 난임, 불임인 부부들이 주변에 적지 않게 있었기에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생각으로 첫째를 출산하였고, 신혼은 즐길 새도 없이 곧바로 14개월 터울로 둘째가 생겼다. 그리고 스물아홉에는 어느새 아이가 둘인 엄마가 되어있었다. 
자기 몸 간수도 못하는 나이에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던 탓일까, 아니면 무엇이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겁 없이 자만했던 탓일까. 아이가 태어나면 드라마에서 나오는 부부들처럼 혼자일 때보다 저절로 더 ‘행복’해 질 거라고 기대 속에서 시작된 육아. 그러나 남편은 정작 아이에 관심 없을뿐더러 직업상 주말까지 일을 해야 했고, 막상 집에 들어와도 저녁 먹은 후 바로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자버렸다. 이렇게 24시간 독박육아는 시작되었다.  

 물론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과 보람을 느꼈지만, 일, 친목, 자기계발을 중시하는 나에게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 둘을 하루 종일 돌본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웠다. 새벽부터 일어나 아이 둘의 이유식을 만들어 하루 세 번씩 쫓아다니면서 먹여야 했고, 아직 동생이라는 개념이 없는 데다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시기인 첫째가 갓난아인 둘째를 혹여나 잘못 건들지는 않을까 감시해야 했으며, 두 명이 한꺼번에 울 때면 서로 달래주느라 정신이 없었고, 둘을 재우기 위해서는 한명이 지쳐 먼저 잠들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빨래, 청소, 설거지 등 집안일까지 해야 하니 항상 자정을 넘겨서야 비로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첫째의 산후조리가 끝나기도 전에 둘째를 낳으면서 늘어난 피부와 불어난 살들로 망가져 버린 몸, 새벽마다 몇 번이고 울어대는 둘째 탓에 모자란 잠으로 날마다 피곤을 달고 살았고, 허리와 다리는 마비되는 것 같아 어렵게 시간을 내며 각종 병원과 한의원을 찾아다녔다. 웃음과 말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대신 외로움과 우울증만이 점점 자리를 차지하였다. 
집에 있는 것이 답답하여 아이들과 외출하고 싶어도 예방접종과 같은 이유가 있지 않은 한 가벼운 산책조차 생각하기 어려웠고 1박이라도 하는 날이면 큰 배낭 두 개는 기본이었기에 밖에 나가기도 꺼려졌다. 
조금이라도 육아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덜고 육아 팁을 얻고자 블로그 등에서 다른 엄마들의 육아 일기를 보면, 어떻게 저렇게 행복해하기만 할 수 있는 건지 의아하고 나 혼자 잘못된 육아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양육비라는 금전적인 부담 등 여러 가지 사유로 결국 둘째가 돌이 되기 전에 양가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다시 복직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들 다 하는 육아를 포기하고 어린아이들을 엄마 품에 떨어지게 했다는 것, 또한 내 개인만을 위해 복직을 한 것 아닐까 하며 일을 하면서도 가슴 속에는 죄책감이 계속 맴돌았다. 예전부터 아이들을 위해 사는 좋은 엄마로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꿈꿔왔는데, 엄마의 부재로 내 아이들이 어딘가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불행해지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을 느꼈다. 하지만 다시 시작될 육아 전쟁이 더 엄두가 나질 않았다. 
여러 권의 육아 관련 서적을 보아도, 아이를 어떻게 잘 기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모두 행복할 수 있을까 매일 고민하던 나에게 같은 사무실에 있던 직원 언니는 조언을 해 주었다.
“누구나 아이를 기르는 건 힘들지. 더구나 연년생이잖아. 힘들면 잠시 부담을 내려놔도 괜찮아. 아이 자체를 포기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자책감을 가지지 마.
아이를 기른다는 것, 그리고 부모가 된다는 건 그저 ‘인내심’을 기르는 거야. 네가 낳은 아이라 해서 그들을 ‘소유’해서는 안돼. 육아라는 것은 그러면서 너 또한 성장해가는 과정이지. 너도 아이들이 네 소유라고 생각하니까 부담이 들고 힘든 거야.

 어느 부모들은 아이를 자기 것인 마냥 공부를 시키거나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면 실망하곤 해. 하지만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다려주는 것. 그것이 부모의 역할인 거지.
네가 정말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길 바란다면 아이를 구속하는 것, 아이에게 구속되는 것보다는 순간순간 아이의 눈을 좀 더 바라보고 아이의 말을 경청해 주면 어떨까?”
둘째가 돌이 지나고 걷기 시작하면서 육아는 전보다는 아주 조금은 수월해진 것 같기는 하다. 연년생이라 힘들겠다 그래도 젊으니까 좀 더 낫겠네라는 소리는 여전히 듣는다. 그러나 오늘도 연년생 육아는 고되다. 
육아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며,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면서 아이가 자라는 소리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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