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지원(해남읍 구교길)

 가을이 되면 내겐 문득 떠오르는 특별했던 날이 있습니다.
이젠 추억이 되었지만 마치 젖동냥하듯 아이를 업고 이 건물 저 건물로 돌아다녔었던 그날…
그날로부터 거슬러 올라 2012년 저는 결혼과 동시에 시어른들이 계신 해남으로 귀농을 했고 2년 후 하늘의 선물 같은 딸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줄곧 생활해온 저에겐 작은 도시, 시골이란 단어가 더 어울리는 이곳에서의 육아란 사실 쉽지는 않았습니다.
아이가 바깥나들이가 가능해진 어느 날 처음 유모차를 끌고 나온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좁은 도로, 울퉁불퉁한 보도블록들. 아이 낳기 전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셨었지요. 시어른과 신랑 외에 친인척, 친구 하나 없는 그야말로 외로운 홀로서기를 엄마가 되고서 시작했다는 것을 직감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보건소에서 보내준 아이내복과 쓰고 있던 로션 등 작은 선물들이 더 애틋하게 느껴지더군요. 그 뒤 군에서 주최하는 행사들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중 유모차 행진, 베이비 마사지 등의 프로그램 등은 아이와 함께 하는 신나는 외출꺼리로 한몫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그날은 아이가 조금씩 커가면서 하루하루가 지겨워질 무렵이었는데, 한 아이엄마가 저에게 함께 해남에 문화센터 수업을 직접 유치해보자며 제안을 했습니다.
바람이 꽤 차던 가을이었는데, 우리 둘은 아이를 등에 업고 수업을 열 수 있는 장소를 구하기 위해 관공서와 여러 기관들을 사방팔방으로 찾아다녔습니다. 모두들 뜻은 좋다며 호의적이었지만 어린아이들과 뛰어놀 공간이 쉽게 나오진 않았고, 지쳐가던 중 YMCA에서 긍정적으로 허락해줘 수업을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는지. 40여명 가까운 아기들이 모여 성황리에 수업을 열게 되었고 지금까지 약 1년 동안 수업이 이어지고 있답니다.

 이 수업의 영향인지 군에서도 이와 유사한 아기를 위한 프로그램을 많이 증설하였고 저처럼 타지에서 내려와 살며 친구도 없던 엄마들은 이런 수업들을 통해 서로 정보도 주고받으며 조금씩 친해지게 되었고 작은 동네라 갈 곳, 배울 곳 없다고 툴툴거렸던 저 자신도 조금씩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 딸은 어느덧 네 살이 되어 지금은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지만 주변에 아이에게 흥미로운 게 있는지 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있답니다. 그 중 ‘해남맘우먼파워’라는 온라인 엄마들 카페도 육아정보 교류에 한몫을 하고 있는 곳 중 하나입니다.

 사실, 육아란 어느 곳에서 키우든 힘든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만 내게 없는 환경을 속상해하며 주저하기보단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아이를 위해, 또 나를 위해 스스로 환경을 만들어 가다 보면 훨씬 발전적인 삶이 펼쳐질 것이라 자부합니다.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에 쓰인 말처럼 이곳의 모든 주권은 군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니, 육아에 있어 권리만큼은 해남 엄마들로부터 나온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권리를 누리고 또 지키는 것은 우리 엄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들은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고 지자체는 이 엄마들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서로 생각하고 소통한다면 정말 아이 많이 낳는 지역, 더 나아가 아이 잘 키울 수 있는 지역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얼마동안이 될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학교를 보내고 아이와 생활하면서 도시에서는 쉽지 않은 자연의 혜택도 많겠지만 분명 불편하고 아쉬운 점도 많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그럴 때면 저는 또 생각하고 고민할 것입니다. 내 아이만을 위한 고민이 아닌 모든 엄마들의 고민이며 마음임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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