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 경(전 영암부군수)

 가을은 사계절 가운데서 가장 많은 별칭을 가지고 있나 보다. 
독서의 계절, 결실의 계절은 물론이고 심지어 남자의 계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중국의 사자성어인 천고마비도 있다. 그런데 천고는 맞는 말 같은데 가을의 마른 풀에 말이 살쪘다는 말은 후세의 과장이 아닐까?

 나의 한 친구가 앞집 마당에 가지마다 빨갛게 매달려 있는 붉은 감을 가리키며 열매의 계절이라고 우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와 함께 저녁을 하고 가까운 공원을 거닐면서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와 이름 모를 벌레들의 소리를 들으며 소리의 계절이 정답이지 무슨 말이냐며 나는 생트집을 한다. 물론 사람은 계절과는 관계없이 소리에 묻혀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아무튼 사람마다 가을을 제멋대로 부르는 이유는 여름 더위에 느긋했던 마음이 갑작스러운 기후변화와 함께 찾아온 감정의 변화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히 내가 가을을 소리의 계절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이유는 유별나게 청아한 각종 백색 소음에 기인한다.

 백색소음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된 것은 1960년대 말 캐나다의 작곡가 머레이셰이퍼가 인간과 소리 환경의 문제로 ‘사운드 스케이프(소리풍경)’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면서부터이다.
셰이퍼는 음악을 잘 만드는 것 못지않게 주위에서 나는 소리를 구분하여 잘 듣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소리환경이 인간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는 음악가였다.
우리가 매일 혹은 아주 가까이서 자주 듣는 진공청소기, 세탁기 소리뿐만 아니라 파도 소리와 시골집 뒷마당의 왕대밭에서 나는 바람소리 등 귀에 익숙하거나 자연의 소리를 백색소음이라고 이름한다. 
백색 소음은 비록 소음일지라도 심신에 안정감을 주며 집중력과 기억력을 증가시키고 스트레스를 줄여주며 수면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 등을 즐기기 위해 이어폰을 분신처럼 관리하면서 모든 소음을 완전 차단하여 백색소음의 순기능까지 지워버릴 뿐 아니라 장시간 사용으로 난청이란 고질병을 가져오기도 한다.
청각은 시각과 함께 우리 뇌에 오래 저장되어 가끔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새벽닭 울음소리, 이른 봄 깊은 산 속에서 메아리 되어 들려오는 뻐꾸기와 꿩 우는 소리, 석양빛 노을 아래서 듣던 느릿한 황소울음, 견딜 수 없게 시끄럽던 개구리 울음 소리, 엄마와 누나의 멋진 하모니의 다듬이 소리, 
아! 어느 늦은 가을 밤 하늘에는 쏟아질 듯 빛나는 영롱한 별빛이요, 수백인지 수천인지 알 수 없는 풀벌레 소리, 나는 지금도 어린 시절 백색소음의 그리움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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