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성 훈(스피치 강사)

 전국 250만 농민들이 벼랑 끝에 절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농민헌법 개정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 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의 원칙이 사문화돼 농민 대다수의 연 농업소득이 천만원도 되지 않는 상황이고 밥상에 오르는 농산물 80%가 수입 농산물인 현실에서 식량자급률은 50% 아래로 떨어졌다.
신경림 시인의「농무」는 1975년 창작과 비평사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저자는 비룟값도 안 나오는 농사 집어치우고 한 다리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자고 말한다.「농무」는 조국 근대화라는 기치 아래, 농업보다는 중공업 육성이라는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 소외된 농민들의 피폐한 삶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굶지 않고 다 같이 밥 먹고 살자고 했다. 그 말은 4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유효하다.
무엇이 변했는가. 농지에 대한 권리, 생산비를 보장하는 최저가격에 대한 권리, 공익적 다원적 가치 창출에 대한 보상, 식량주권과 안전하고 안정적인 먹거리 제공을 요구하는 것이 농민들의 요구로만 끝나고 있는 것도 여전하다. 

 식용 유전자 조작 식물(GMO,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수입 1위 국가라는 불명예 속에 농민들이 요구한 것은 수입반대였고 또 정작 중요한 토종 씨앗을 보호하자는 것이었다.  더욱이 외국 기업에 울며겨자먹기식으로 갖다 바치는 로열티는 얼마인가. 
식량주권을 헌법에 명시하자는 것은 이런 상황과 맥락을 함께한다. 농촌은 지역민에게 삶의 터전이자 애착의 공간이다. 
농촌은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우리 자녀들이 지닌 정서적 향수의 공간이다. 
헌법의 개정은 그 사람들이 살아나기 위한 인문학적 고찰과 철학적 접근을 동시에 반영하자는 것이며 이는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다. 
역사와 지역문화 자원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것은 농어민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 전제가 됐을 때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헌법이 내재한 추상성의 모호함을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접근해 농어민의 기본권을 확실히 보장하자는 것이다.
그 사례가 되고 있는 것이 스위스의 헌법이다. 

 스위스는 한국과 비슷하게 국토의 3/4이 산지다. 스위스 헌법 제104조 1항만 보더라도 “연방은 농업이 지속가능하고 시장 지향적 생산 정책을 통하여 국민에 대한 안정적 식량 공급, 천연자원의 보존 및 전원지역의 유지, 지역 분산적인 인구분포 등 사항과 관련하여 실질적인 기여를 하도록 보장한다”고 쓰여 있다. 
반면에 우리 헌법 제123조 4항은 “국가는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라고만 돼 있어 ‘어떻게’라는 방법론이 없다. 
농민헌법 개정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하다. 다원화된 생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것을 무리하게 한 가지 생각으로 통합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각자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농민헌법 개정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것이다. 
우리 삶 따로, 농어민의 삶이 따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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