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우수영에서 일어났던 명량대첩을 그린 영화, 명량이 한국영화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12일만에 1000만 관객동원, 12척의 배로 133여척의 왜선을 무찌른 명량대첩의 소재는 새로울 것이 없는데도 영화는 1000만이 넘는 국민들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였다.

많은 해남군민들도 명량을 봤다. 61분간의 전투신, 명량대첩의 내용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군민들은 전투신에 인위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명량이 해남에서 일어난 전쟁이기에 더 감동 있게 봤다고들 한다. 회오리 물살에 휘말린 이순신의 배를 끌어올리는 백성들, 실제 명량해전에선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해남 곳곳의 사료는 해남의 숱한 민초들이 명량을 향해 떠났다는 기록과 설화를 전한다. 따라서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백성들의 모습에서 우린 당시 활약했던 해남진도민들을 오버랩시킨다.

엄지를 향한 까치의 절대적 사랑을 그린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절대적 인간상을 그린 박봉성의 ‘신의 아들’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장편만화이다. 이현세와 박봉성은 만화에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진 고독한 주인공들을 등장시킨다. 초월적 힘의 영웅, 억눌린 답답한 세상에 맞설 영웅들, 이들 주인공들에겐 불가능은 없다. 이들 만화는 신군부 통치하의 암울한 현실에 답답해하던 성인들을 만화방으로 불러들었다.

2014년, 이젠 만화가 아닌 영화관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절대적 영웅인 이순신을 보기 위해. 물론 영화는 이순신을 성웅이 아닌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을 그리고 있다. 유신시절 군부는 이순신을 성웅으로 미화시키려 절대적 노력을 기우렸다. 서울 광화문을 비롯한 모든 초등학교 교정에 큰 칼 옆에 차고 호령하는 이순신동상을 세웠다. 문보다는 무의 우월성을 나타내려는 노력, 군부가 절대적 영웅으로 신격화했던 이순신이 이젠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인가.

지금의 시대는 민주주의 가치를 안 시대이며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의 가치를 이미 체득한 사회이다. 리더십의 부재가 사회를 얼마나 답답하게 만드는지, 그래서 지금의 사회는 실존 인물인 이순신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면서 또 한명의 영웅을 기다린다.

명화 명량에서 이순신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내는 영웅임에 틀림없다. 80년대 이현세와 박봉성이 그렸던 인물처럼 강렬한 카리스마가 있는 영웅이다. 그러나 그 영웅은 임금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자이며 임금이 버린 조국을 살리겠다고 나선 이이며 충의 근본은 백성이라고 외치는 이다. 현실의 정치에 답답해하는 관객을 몰입시키기에 충분하다.

영화 명량은 민초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물론 민초의 등장이 작위적이고 인위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그것이 밉지가 않다.

90년대 이후 만화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영웅들 대신 다양한 개성을 중시하는 주인공들을 등장시킨다. 획일화된 사회가 아닌 다원화된 사회, 춤과 음악, 음식에 소질이 있는 주인공들이 만화를 장식한다. 다양한 개성을 중시하는 사회,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시대상에 맞게 등장한 주인공에게 독자는 열광한다. 영화도 다양한 장르가 등장했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도둑들, 설국열차 등.  

그런데 최근 영화시장에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1000만 관객을 불러 모은 변호인이 그렇고 광해가 그렇고 명량 이후 개봉한 해적이 그렇다.

변호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린 영화이고 광해는 청나라에 반한 자주적인 광해를 그리고 있다. 해적은 코믹영화이지만 명나라에 대한 조선의 사대성을 풍자하고 있다.

이들 영화에서도 민초가 등장한다. 권력의 속성과 권력의 부패에 맞선 이들이 그려진다.

민초 스스로 자신들의 가치를 자각한 시대인 요즘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본다.

영화 명량에서 대장선의 노를 잡았던 민초들은 자신들의 고생을 후손들이 알아줄까라는 말을 남긴다. 애국주의에 대한 호소이다. 애국주의하면 영화 ‘디워’가 떠오른다. 영화 디워는 마지막에 애국가를 내보낸다. 영화를 애국주의에 호소했다는 혹독한 논란을 일으켰던 대표적인 영화이다. 그러나 명량은 민초들의 가치를 놓치지 않았기에 그 대사가 울림으로 온다.

동양대학교 진중권 교수는 영화 명량에 대해 졸작이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명량이 성공한 것은 이순신 덕분이라고 했다. 명량대첩에 대해 너무도 많은 것을 알고 있는 해남사람들도 이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우린 명량에 열광한다. 40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지금, 이는 영웅을 그리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반증한다.

시대상의 반영, 명량의 흥행을 시대상이 낳은 흥행이라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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