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광 욱(방송통신대 해남학생회장)

 해남 옥매광산 이야기와 영화 ‘군함도’를 보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때 노무자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목포 유달산 아래 근대역사관 1관과 2관으로 탈바꿈한 일본영사관과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은 일제의 침략과 수탈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목포는 남도 평야에서 수확한 쌀과 목포에서 생산되는 면화를 일본으로 실어갔던 곳이다. 
주변에는 그때 지어진 일본식 건물이 여럿 남아있고 바다가 훤히 보이는 언덕배기에 세워진 영사관 지하에는 비행기 폭격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파 놓은 방공호는 우리 노무자들의 피와 땀이 묻어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해남학습관 학생들이 지난달 24일 목포 유달산 등반과 목포 근대 문화유산을 견학했다.

 방송대 해남학습관은 학생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새학기와 신입생을 맞아 학생들 간 친목 도모 차 이번 MT를 마련했다. MT에는 광주전남 지역 신현욱 학장을 비롯해 해남학습관 류연두 관장, 2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이날 유달산에 오른 학생들은 넓게 펼쳐진 목포 전경을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하며 대학생으로서 포부를 키웠다.
학생들은 이어 노적봉에서 이순신의 용감함과 지혜를 배우고, 이난영의‘목포의 눈물’을 들으며 우리 역사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 모두의 망향가였던 목포의 눈물은 당시 서울 종로거리의 레코드 가게 축음기에서 밤낮없이 틀었다고 한다. 레코드 가게들이 진열장에 써 붙여 놓은 가사 앞에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들로 연일 붐빌 정도였다고 한다.

 따라서 '목포의 눈물'은 유행가로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는 노랫말이 됐고 유달산 기슭에 세워진 이 비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요 노래비다.
그 아래는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잇는 국도 1호선이 시작되고 목포에서 부산까지 연결되는 국도 2호선이 시작되는 기점을 알리는 비가 서 있다. 옆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데,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소녀는 이불을 두르고 있다.
가까이 있어도 잘 찾지 못하는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고 3.1절 99돌을 맞아 대학생으로서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져야겠다고 다짐도 해본다.

 서울에 대학본부를 둔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해남에도 학습관이 있다. 해남터미널 앞 로터리 빌딩 3층에 위치한 학습관은 해남뿐 아니라 인근 지역 학생들 200여 명이 공부하고 있다.
또 지난달 10일에는 60여 명의 학생들이 참석해 신·편입생 환영회를 가졌다. 학생회는 스터디와 봉사활동, 문화탐방 등의 활동을 하며 해남 유일의 국립대학교로서 역할을 해 나가고 있다.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