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 명 희(가족상담센터 소장)

 부모교육과 상담을 직업으로 하는 이들은 가족과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그들 또한 아내이고 주부이고 며느리고 부모이다.
모든 가정이 겪는 소소한 일들을 그들 또한 겪고 있다. 
필자 또한 아들이 있다. 아들과의 관계는 더 어렵고 그래서 눈치를 보게 되고 여느 집과 다를 바 없는 고통을 겪었다. 
아들이 중학생이 됐을 때 말수가 줄어들었다. 아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답답함에 말을 걸면 늘 “네”, “아니오”라는 너무도 짧은 대답만 나왔다. 대화를 나누려 시도해 봐도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아들이 마음의 문을 닫은 것이다.
몇 년 전 시아버지의 팔순 잔치 때 가족 및 주변 사람들과 저녁식사 자리가 마련됐다.
아들에게 “중요한 날이니 시간을 꼭 지켜야 된다”고 누차 당부했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됐는데도 아들은 오지 않았고 도중 아들과 연락이 닿자 차를 되돌려 아들을 태우고 갔다. 
차 안에서 30분 늦은 아이에게 엄청 화를 냈다. 한 번 분출된 화는 참을 수 없이 쏟아져 나왔다. 내 안에 그렇게 어마어마한 화가 숨겨져 있었는지 나조차도 놀랐다. 
화를 쏟아낸 난 가슴이 조금은 뚫린 기분이었지만 그때부터 중2 아들의 혼란과 방황은 시작됐고 중3 때 절정을 이뤘다. 
중3 초에 아들이 “작년에 정말 힘들었다”고 말을 했다. 엄마가 힘들게 했다는 의미의 말이다. 그런데 난 아들의 방황을 다른 데서 찾으려 했다. 아이는 신호를 보냈는데 엄마가 헤아려주지 않자 아들은 힘든 시기를 보낸 것이다.
올 초 가족모임에서 어떤 분이 아들의 생년월일을 짚어보더니 “너 엄마가 정말 미웠겠다”고 말했다. 이에 아들은 망설임 없이 “네 미웠어요.”라고 대답했다. 
순간 ‘기회다’라는 생각이 번뜩 들어 “엄마가 정말 미웠을 것이다. 그때 엄마가 너무 화를 많이 내서 미안했다”고 일단 사과를 했다. 
이날 아들과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그때 그렇게 심하게 화를 낸 엄마를 보고 당황스러웠을 것이고 억울했을 것이고 어이없이 당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네가 그렇게 잘못한 것이 아니었는데. 그때 화는 다른 사람에게 냈어야 할 화였는데 어이없게도 너에게 내버렸다. 가끔 어른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내야 하는 화를 힘없는 사람들에게 낼 때가 있단다. 어른이어도 엄마처럼 자기 자신을 조절하지 못할 때가 있어. 그런 엄마로 인해 네가 많이 힘들었을 거야. 정말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아들은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미안하다고 사과는 했지만 그 당시 그 아이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어른의 분노를 온몸으로 받았다. 그 마음이 오죽했으랴 추측을 해보지만 실제 아픔의 강도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상처 준 사람은 상처받은 사람의 아픔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해 미안하다는 표현을 했으니 상대방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상처 받은 사람은 그 사과가 흡족하지 않기에 계속 그 일을 끄집어내는 경우가 있다. 
다시 끄집어내면 진심을 담아 다시 사과를 하면 상처는 점점 옅어진다. 
사과할 때는 구체적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린 부분을 표현해야 진심이 전달된다. 
진심이 담겨있어야 상처를 치유해주는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그 후 아들에게서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말이 조금씩 부드러워졌고 없는 말도 조금씩 늘리는 등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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