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상금(재경향우. 전 서울시의원)

 나이 탓인가. 나는 요즘 부쩍 고향이야기를 많이 한다. 
또 어릴 적 꿈도 자주 꾼다. 
물론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면 세계 어느 곳과도 소통이 가능하고 물건까지도 사고파는 지구촌 시대에 고향타령이 얼마나 진부한가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도 고향이 좋고 유년시절의 고향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이 뭉클하고 코끝이 찡하다. 
가능한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승용차가 아닌 소달구지도 한번 타보고 싶다. 소달구지 타고 동네 신작로며 들녘이며 다녔던 기억, 지금은 옛 풍경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그 풍경이 오롯이 살아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추억과의 깊은 교류를 의미하는 것일까. 까까머리 옛 친구를 찾고 동창들이 그리워지는 것은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하물며 나의 성장기를 지켜봤고 감성과 정감을 온통 안겨준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더구나 금년은 전라도 정도 천년이 되는 해라 그런지 올해는 고향이 더 그립다.
고려 현종 9년(1018년)에 지금의 전라북도 중신도시 전주목의 ‘전’과 전라남도와 제주도 일대를 관찰했던 나주목의 ‘나’자에서 전라도가 탄생했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천년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두륜산 천년수를 전남도 각지에서 추천한 4000여 그루 가운데서 선정됐다고 하니 이 또한 기쁘기 한량없다. 
학창시절 두륜봉을 오르내릴 때 무심히 보았던 만일암 인근의 수령 1100년 높이 22m, 둘레 9.6m의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전남을 대표하는 수목이라니 날씨가 풀리면 안부인사 겸 다녀올 생각도 해 본다. 
또 천년수에 얽힌 전설도 들여다보고 싶다. 하늘에서 쫓겨난 선녀가 제작했다는 북암의 마애여래좌상, 불상을 다 새기자 천년수에 묶어놓은 해를 풀어준 후 하늘로 올라갔다는 선녀의 이야기이다. 
나는 철학자가 아니라서 사랑의 본질을 알기 쉽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내 방식의 사랑이란 서로를 알고 난 후 이해하는 데서 우러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는 사람과의 관계뿐 아니라 동물과 사람. 사물과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고향사랑 역시 고향에 대한 관심과 고향의 역사를 얼마만큼 알고 이해하느냐에 달려있는 것 아닐까. 60여 년 전 중·고등학교에서 어느 역사 선생님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내 고향 해남의 6현을 알고부터 나는 고향을 더욱더 사랑하게 됐다. 
해남 6현은 금남 최 부, 석천 임억령, 미암 유희춘, 귤정공 윤구, 고산 윤선도. 취죽헌 박백응이다. 
그들의 혼이 금강골 해촌서원에 모셔져 있다. 금강골에도 봄은 왔을 것이다.
해남우리신문에서 가끔이나마 해남6현에 관한 기사를 접할 때 고향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된다. 
해남6현에 대한 보다 많은 기사를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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