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명희(가족상담센터 소장)

 지난겨울은 몹시 추웠고, 독감 환자가 많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자주 접했다. 특히 몸이 허약한 노인들은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80대 후반인 친정어머니도 독감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혼자 병원에 다니시면서 치료를 하다 폐렴으로 악화돼 결국 입원을 하시게 됐다. 2주 후 퇴원을 할 무렵 우리 형제들은 친정어머니 집이 너무 추워 자식들 집에 계시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집으로 가시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눴다. 
그리고 목포에 살고 있는 남동생 집에 며칠 계시다 해남의 우리 집으로 오기로 하셨다. 그런데 동생네 부부가 어머니를 모시는 일로 불편한 상황이 생겨 결국 퇴원 후에 우리 집으로 오시게 됐다. 
 어머니와 같이 살지 않다가 별로 넓지 않은 아파트에서 같이 살아보니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았다. 아들과 딸은 자신들의 방에 있고, 거실은 나의 주생활 공간이었는데 어머니는 계속 누워 하루 종일 TV를 보고 계시니 나의 공간은 없어지고 쉬지도 못하게 됐다. 출근했다가 틈틈이 점심을 챙겨드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3월부터는 바빠지는 일 때문에 어머니를 챙기기 힘든데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런 자식의 마음을 다 읽으셨나 보다. 그렇게 한 달 정도를  생활하다 3월 초 날씨가 조금 따뜻해지자 혼자 사시는 집으로 돌아가셨다. 
날씨가 풀려 가신 것이지만 가시기 전에 여러 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겨울의 찬 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 날 어머니가 집으로 가실 때 “어머니! 정말 죄송해요, 자식들한테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라고 했지만 그것이 위로의 말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신 후 오히려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밥도 잘 먹고 있고 방도 따뜻하고 복지관에도 다니고 있으니 걱정하지마라고 자식을 안심 시키신다. 어머니는 그동안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는데, 거동이 불편해지니 당신의 한 몸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에 눈물이 나왔다. 서로들 모셔가기를 바라며 망설이고 있는 형제들의 모습에 정말 죄송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많이 서글프셨을 것이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늙은 어머니를 위해 가족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부모는 자녀를 낳고 그 자녀들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하지만 자식들은 부모 한 분을 모시는 것이 쉽지 않다. 
 지금에서 보면 부모님이 늙으시면 더 챙기고 생각해야 되는데 정작 자기 자식들을 더 먼저 챙긴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늘 우리가 먼저였을 것이다. 
가족 간에 이런 경험을 하면서 처음에는 다른 형제에게 ‘우리들을 키우느라 많은 고생을 하셨는데 얼마 동안이라도 자신들의 집에 계시라는 말을 하지 않지?’라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어머니와 같이 생활하면서 딸도 힘든데 며느리들은 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형제들도 모두 맞벌이에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들도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 후에 올케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 장남 며느리 역할 하느라 고생했고 앞으로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생활하자, 형제 셋이서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어머니의 건강이 더 나빠지면 그때 다시 의논하자”고 했다. 
 옛날에는 대가족이 함께 살면서 역할을 분담했기에 틈틈이 어른들을 모실 수 있었지만 핵가족이 되고 여성들도 대부분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집에서 나이 드신 어르신을 돌보는 것이 쉽지 않다. 노인 요양보호를 받으면 그나마 도움이 되지만 등급을 받을 수 없는 노인들은 자식들이 직장생활 하면서 돌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런 생활을 노인들도 알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아 최대한 혼자서 외롭게 견디고 있다. 
늙으신 부모님이 계실 때 가족 간의 소통과 따뜻한 말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불편하고 힘든 그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은 “고생하셨어요” 하는 말 한마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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