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태정(해남읍지편집위원장)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있는 날이었다. 4월 말의 싱그러운 바람에 창문 밖 느티나무 새 이파리도 팔랑거리고 있었다. 분단 73년 만에 한반도에 가장 맑은 날이 찾아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잠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가 되돌아왔다. 문학 작품에서나 나올 법한 그 상징적인 몸짓에 순간 울컥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철없던 시절부터 욱여넣어 가슴 저변에 쌓여있던 그 소원이 펼쳐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두 정상이 나란히 의장대를 사열하고 난 뒤 수행원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북측 장군이 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순간 또 가슴이 울컥해 왔다. 물론 충성의 의미는 아닐 터이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가장 앙숙이었지 않은가. 가까우면서도 가장 멀었던 남과 북이 그럴 수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간 국정원장들은 피도 눈물도 없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런 국정원장 중의 한 사람이 남북공동선언문을 발표하는 순간에 눈물을 보였다. 2000년, 2007년,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장본인이라니 그 순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함께 떠올랐을 법하다. 
왜 그리도 멀리만 에돌았을까? 바로 철조망을 걷으러 간 걸음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적어도 그 출발은 시작되지 않았는가. 
전날은 해남에서 세월호 마지막 집회를 했다. 문화제 형식으로 4년 동안 해왔던 행사를 정리하는 자리였다. 문화공연에 이어 노란 우산과 촛불을 들고 읍내를 걸었다. 어색한 경찰차를 앞세운 행진은 관제데모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경찰의 움직임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지자 대열 안에서는 일상의 얘기들이 오갔다. 
차가운 하늘엔 별을 거느리지 않은 열하루 달이 밝았다. 행사장으로 돌아와 그 하늘로 풍등을 띄워 보냈다. 별이 된 20여 개의 풍등이 달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어른이 되지 못하고 별이 되었어요.”라던 영상의 표제처럼 아이들이 해맑게 떠나가고 있었다. ‘얘들아, 남과 북이 달라지려 하고 있어. 이러다 통일이 올지도 몰라.’ 풍등에게 손을 흔들었다. 무관심과 느슨함으로 모두 잊어가던 4년 동안 자리를 지켰던 주최 측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행사가 끝난 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문학회 회원들끼리 조촐한 술자리를 만들었다. 연로한 노선배는 기분이 좋아 낮부터 마을회관에서 막걸리로 대취했노라며 대신 마음이 담긴 술값을 보내왔다. “한반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내친김에 통일까지!” 그렇게 우리도 단골 술집에 모여앉아 철조망 걷듯 하나둘 술병을 넘어뜨렸다. 
남북정상회담의 만찬 음식은 옥류관의 평양냉면이었다. 회담 당일 서울의 평양냉면집에서는 냉면을 먹기 위해 긴 줄이 이어졌다고 한다. 정상회담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 주말 저녁, 텔레비전에서도 정상회담의 장면을 되풀이 보여주고 있었다. 평양과 거리가 먼 남도의 땅끝엔 평양냉면집이 없다. 우리집에서는 소면 비빔국수로 대체해 평양냉면 대열에 동참하기로 했다. 서로 양념과 뭉쳐서 떨어지지 않는 긴 면을 보면서 앞으로도 길게, 영원히 한반도에 평화가 오고, 그게 통일로 이어지기를 빌어보았다. 
어투는 다른 두 나라, 그러나 통역이 전달할 수 없는 대화 속 행간의 의미까지도 온전히 느낄 수 있고, 공유할 노래와 문화가 있고, 생김새도 비슷한 한겨레였다. 그것은 냉면을 비로소 냉면이게 할 양념과도 같은 것이었다.  
“종전과 평화가 보장되면 왜 핵무기를 갖고 어렵게 살겠냐”고 하던 김 위원장의 말은 진실성이 있었다. 문 대통령의 빛난 외교 전술에도 박수를 보낸다. 우리에게도 이런 멋진 지도자가 있다고 소리 높일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판문점선언을 위장쇼라고 하는 무리가 있다. 험담은 가끔 비판이라는 탈을 쓰고 있다. 그것은 꽤 분석적이고 이성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에 반해 칭찬은 사고가 없는 감성의 산물이라 치부된다. 험담은 자신의 좁은 가슴도 함께 피폐해지게 한다는 걸 모를까. 험담은 분열이다. 서로 배려하고 칭찬하는 분위기가 결국 판문점선언을 이끌어내지 않았는가. 칭찬하는 사람의 마음은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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