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석 천(전 교사)

 아카시아 향기 흩날리는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家庭)이라는 낱말의 가(家)는 한 지붕 아래의 식구들을, 정(庭)은 함께 하는 공간을 뜻한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가정 안에서 삶을 얻고 가정 안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존재다. 가정은 따뜻한 심장과 행복한 눈동자가 서로 만나는 곳이다. 상함과 아픔이 싸매지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어 갖는 곳, 어버이가 존경받고 어린이들이 사랑받는 기쁨의 공동체다. 그래서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즐거운 가정은 일찍 맛보는 천국’이라고 했던가 싶다. 
가정은 사람의 도리를 배우는 학교이기도 하다. 윗세대가 정성을 다하여 아랫세대의 ‘몸과 마음을 닦고 육체적, 인격적인 성장’을 돕는 곳이다. 
가족학의 대가인 미국의 버지니아 사티어(Virginia Satir) 교수의 대표작으로 ‘가정은 새사람을 만드는 공장(The New People Making)’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은 국내에 ‘아름다운 가족’으로 번역되었다. 
책 서두에 쓰인 글을 가져온다. 「가정은 사람 만드는 공장과 같다. 자동차 공장에서 불량 자동차를 만들어 내면 불량 자동차가 길거리를 다니게 되고, TV 공장에서 불량품을 만들면 불량 TV가 배달된다. 마찬가지로 가정이 건강하면 그 가정의 자녀들은 당연히 건강하게 되고, 가정이 불행하면 그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들 역시 불량 청소년이 된다.」 
결국 세상의 출발점은 가정이다. 우리 조상들도 사회의 바탕은 가정이라고 생각했기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을 것이다.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한 것은 이처럼 가정이 사회의 기초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무너져 가는 가정을 회복시켜 보자는 의미일 것이다. 하나 가정의 달이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퇴색되어 버린 지 오래이다.

 어떤 이들은 현 우리나라 가정의 모양새를 집(House)은 있는데 가정(Home)이 없다고 한다. 가정이 식당이나 여관으로 변모(變貌)되어가고 있다. 핵가족 시대로 접어들면서 가정에서 아이들의 존재감은 높아지는 대신 노인들의 위치는 위축되거나 소외되고 있다. 결혼율은 해마다 낮아지고 출산율, 부부 이혼율과 자살률 등은 OECD 국가 중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 사회가 추구하는  성공 기준이 돈과 권력과 명예라는 병든 생각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어 마땅히 가정에서 감당(堪當)해야 할 사람 됨됨이 교육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고 아이들에겐 한 주간이 ‘월화수목금금금’이 된 지 오래다. 스승의 의미와 사표(師表)가 사라진 세상이다.
이런 현상들은 흐느적거리는 가정의 단면이다. 
청학동 훈장이 훈장 노릇을 하며 가장 자주 듣는 말은 “사람 좀 만들어 주세요.”라는 말이란다.
훈장은 이렇게 답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새싹이야 자연에 순응하면 저절로 자라지만, 자녀는 교육을 통해 사람다운 사람으로, 사람 구실을 하며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사람, 좋은 사회가 된다고. 
그렇다. 가정은 교육의 모판이다. 책을 통해 배우는 지혜보다는 가장 가까운 멘토(mentor)인 부모를 통해 가정에서 배우는 것들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세계의 0.2%밖에 되지 않는 민족, 그러나 하버드생의 30%를 차지하고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유대인의 성공 비결 역시 가정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빛바랜 5월이다.
시계는 살 수 있지만 시간은 살 수 없듯이 돈으로 집(House)은 살 수 있지만 가정(Home)은 살 수 없다.
그나마 5월에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부부의날, 성년의날 이런 날들이 있어 그날이라도 가정과 가족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굴곡지고 빛바랜 5월이 다시 제 모양과 색깔을 찾기를 소망한다. 
영국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던 비숍의 곡 ‘즐거운 나의 집’ 가사처럼 말이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 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