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태 정(땅끝문학회 회장)

 산비탈을 깎아 동네의 가장 높은 곳에 터를 잡았더니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낮 동안 고단했던 시골마을은 일찍 불이 꺼진다. 우리 집은 자정이 가깝도록 불이 켜져 있다.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으니 참 좋다고 했다. 그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네모난 테두리에 싸인 불빛은 사람의 온기를 머금고 있다. 그곳엔 촛불, 호롱불, 전등불이 사람과 함께 있어왔다. 한밤 내내 혼자 서서 지나는 사람을 호시하며 사방으로 밤송이 가시 같은 빛을 뿌리는 방범등과는 다르다. 
어둔 밤 낯선 마을을 지나본 적 있는가? 모든 집들의 불빛이 꺼지고 까만 적막에 싸인 마을, 차가운 어둠의 공간을 향해 창밖으로 스미는 네모난 불빛의 따스함을 본 적 있는가. 그 불빛은 집주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보는 이를 기다리는 반가운 불빛이 된다.
객지를 떠돌던 젊은 시절, 명절날 저녁 찾아들었던 고향집, 아버지는 밤새 집에 켤 수 있는 불이란 불은 다 켜놓으셨다. 언제라도 와도 좋다. 너희들의 무사귀환을 뜬눈으로 기다리고 있다는 것에 대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창호지를 배경으로 사선으로 교차한 댓살의 실루엣이 역시 네모난 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자식을 기다리던 아버지의 마음이 전해졌다. 불 꺼진 집을 들어서 본 이들은 그 막막하고 썰렁함의 깊이를 안다. 불과 빛은 곧 살아 있는 것의 다른 모습이다. 
지방선거가 20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출근길 읍내 주요 교차로마다 후보자들이 교통정리를 하면서 인사를 보내온다. 비록 선거철에만 반짝 보이는 그들의 미소지만 네모난 불빛처럼 마음이 따스해져 나도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결과는 잔인하겠지만 그중에는 꽃다발을 받을 이도 있을 것이고, 값비싼 고배를 마실 이도 있을 것이다. 낯가림이 있는 나는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잘 하지 못한다. 그들처럼 길거리에 서서 인사할 용기도 없다. 그들을 스치면서 차라리 기대감에 부풀 수 있는 지금 이 과정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그간 해남군수들은 후보자시절 유독 청렴을 강조했다. 구속으로 옷을 벗어야 했던 전임자들을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삼았을 법하다. 
청렴도 중요하지만 아버지처럼 네모난 불빛을 켜두고 군민을 기다린다면 그 모든 것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애틋한 마음으로 군민을 바라볼 수는 없을까? 물론 군수실에 밤늦도록 불을 켜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마음속에 네모난 불을 켜두고 군민을 기다려 달라는 얘기다. 해남을 밝힐, 군민을 위한 등불은 군수가 걸어야 하지 않겠는가. 
늦은 밤, 하늘에 걸린 달은 누구를 기다리기 위해 저렇게 가슴을 데우고 있는 것일까? 동남쪽 하늘에 기웃하게 걸린 아흐레 달이 별과 더불어 총총하다. 아무래도 별을 기다렸나 보다. 혼자만 빛나는 독선적인 보름달과는 달리 인정이 있다. 혼자만 하늘을 차지하면 외롭지 않겠는가. 왠지 손을 뻗으면 따스해질 것만 같다. 
이제 명절이 되어도 친가나 처가나 불을 켜둘 어른들은 계시지 않는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커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나를 위해 켜두었던 그 네모난 불빛의 따스함이 그립다. 마을 사람들을 위해, 객지에서 돌아오는 자식들을 위해 이제는 내가 불을 켜야 할 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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