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鳴梁)!

사나운 물살이 휘돌아 치면서 뱉어내는 소리가 ‘회오리’같다고 하여 ‘회오리 바다’라고도 불리는 곳, 거친 물살을 묵묵히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풍전등화 같던 국가적 위기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의 임무를 맡았던 이순신, 그의 손에 조선의 운명이 걸렸을 때 그는 회오리바다인 명량에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적에게도 장군에게도 명량은 사지(死地)였다. 수만 년을 거꾸로 뒤채이며 소리를 지르는 그 물살을 내려다보면서 사생존망(死生存亡)의 흐름을 뒤집을 역류를 계책(計策)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영화 ‘명량’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역사극이다.

1592년 4월 13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일본군 제1군이 절영도(絶影島)에 상륙함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은 1598년까지 무려 7년 동안의 기나긴 전쟁이었다.

당시 조선 서민들의 형편을 징비록(懲毖錄)과 난중잡록(亂中雜錄)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 무렵 조선 백성들의 참상은 지옥을 이루었다. 부자가 서로 잡아먹고 부부가 서로 잡아먹었다. 뼈다귀를 길에 버렸다’(「징비록」)

‘굶어 죽은 송장이 길에 널렸다. 한 사람이 쓰러지면 백성들이 덤벼들어 그 살을 뜯어먹었다. 뜯어 먹은 자들도 머지않아 죽었다.’(「난중잡록」)

1957년 2월 이순신은 한산 통제영에서 체포되고 원균이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이순신의 죄목은 군공을 날조해서 임금을 기만하고 가토의 머리를 잘라오라는 조정의 기동출동 명령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597년 정유년 여름에 원균이 이끄는 경상, 전라, 충청의 삼도 수군 연합 함대는 칠천량에서 참패한다. 조선 전함 300척 이상이 깨지고 삼도 수군은 전멸되었다. 한산 통제영 휘하의 모든 포구와 연안과 섬들에 적의 깃발이 휘날렸다.

영화「명량」은 이순신이 고문을 받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건 충(忠)을 반역으로 몰아가는 방법이었다. 장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칼날과 선조의 칼날 가운데 놓여 있었다.

장군이 기소된 것은 알 수 없는 일이었고 무의미했다. 그에게서 특별한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 조정은 원균의 칠천량 참패로 인해 존폐위기에 있던 나라를 구하라 명한다.

“아직 신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수군은 거의 힘을 잃었으니 육군에 힘을 합하라는 조정의 명령에 이순신은 이렇게 답한다.

‘바다를 열어주면 적들은 한양으로 직진할 것이니 신의 목숨이 있는 한 이 길을 지키겠나이다.’

하지만 그에게 적의(敵意)는 팽배했으나 함대는 없었다. 부하 장수들까지 싸움의 불가함을 주장하고 군사들의 사기(士氣)는 사기(死氣)가 된 상황이었다.

‘무릇 장수된 자는 충(忠)을 쫒아야 하고 그 충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에게 향해야 한다.’

필생즉사 사필즉생(必生卽死 死必卽生)!

그는 명량의 회오리를 한없이 바라보았다.

‘장군이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은 적에게 있을 것이었고 적이 장군을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장군에게 있을 것이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다.

장군은 전선 12척으로 우수영에서 발진(發進)한다. 적은 330척의 함대로 사지(死地)인 명량으로 들어왔다. 9월 16일, 장군은 세계 해전사에 유래가 없는 전승을 거두었다. 이른바 명량대첩이다.
이 영화가 아바타를 넘어 최고의 관객을 동원한 것은 아마 ‘충(忠)이란 무엇인가?’ 이 한마디 때문일 것이다. “충(忠)이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결의(決意)에 찬 한 줄의 대사는 흐느적거리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가슴속 응어리들을 풀어놓을만한 대답이며 한편으론 백성을 아랑곳하지 않고 위만 바라보는 충성 맹세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충(忠)이란 무엇인가? 눈이 백성을 향하는 것이다.

장군에겐 오직 백성이 충(忠)의 대상이었고 희망이었기에 희망 없는 세계를 희망을 안고 돌파했다.

장군은 정치 문외한이었다. 다만 충(忠)이 백성을 구했다. 그의 눈의 중심은 항상 백성에게만 있었다. 그의 충(忠)은 그를 성웅 (聖雄)으로 불리게 했다.

명량의 마지막 장면은 백성들이 해안에서 환호하는 모습을 크로즈업 한다.

적들이 도망하고 명량의 거센 물결이 안정을 되찾은 후 장군은 아들과 이런 대화를 한다.

“이건 천운(天運)이었다.”

“하늘의 뜻이 천운이 아니라 백성이 천운이었다”고.

장군이 바라보았던 회오리 바다는 지금도 입을 벌리고 뒤채이고 있다.

회오리 바다같이 조용할 날 없고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은 짠하디 짠한 우리 현실을 바라보는 가슴은 이런 소리를 내뱉고 싶다.

‘다시 충(忠)이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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