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항일독립운동추모사업회 회원들은 지난 14일 제8회 합동추모제를 마치고 23일 항일독립운동의 성지인 완도 소안도와 신지도를 탐방했다.

20여명의 회원들이 함께한 완도 항일운동 성지탐방, 소안도에 도착하자 집집마다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걸린 태극기 마을은 15개 마을 1361가구가 함께한다.

이곳은 바람이 많이 부는 섬이라 태극기가 2~3개월이면 찢어지기 때문에 교체 비용은 완도군에서 부담해준다.

소안도는 지금까지 20여 명의 건국훈장 수훈자를 배출해 전국 면지역에서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가 나온 곳이다. 소안도 사람들은 독립운동을 하다 주민이 투옥되면 남은 주민들은 이불을 덮지 않고 겨울을 지내는 등 의리가 깊었다고 한다.

우리들은 25m가 되는 국기대와 15m가 넘는 항일운동기념탑을 참배했다. 2만여 평이 넘는 항일운동기념공원에 건립된 기념관에 들렸다. 소안도는 1900년대 서당과 야학을 통해 배운  선각자들이 반일비밀결사단체인 수위위친계(守衛爲親契)와 배달청년회 등을 만들어 조직적인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이준하 열사 등은 우리나라의 곡물, 문화재 등을 수탈하기 위해 왜선의 항로를 안내하는 당사도 등대에 잠입해 일본인 등대수 4명을 살해하는 등 독립투쟁의 의지를 불태웠다.

이계욱 소안항일운동기념사업회 회장은 이때 소안도 800명 이상의 주민들이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낙인찍혀 일제의 통제와 감시를 받았지만 일본의 국경일을 지키지 않고 일장기를 내걸지 않는 등 저항을 했다고 설명해줬다.

명사십리로 유명한 신지도엔 5000여 평의 항일기념공원에 폭 20m 높이 15m의 위령탑과 항일독립운동 자료전시관까지 갖춰져 있다. 또 애국선열들의 흉상이 20여 분이나 건립돼 있었다.

신지도에선 독립자금을 모금해 상해임시정부에 전달하고 해외와 국내를 연결하는 지하 독립운동을 전개했고 국내에서는 소학교를 건립해 이념교육을 전개했다고 한다.

소안도와 신지도는 각각 항일 운동사를 완도군의 지원을 받아 출간했으며 추모사업회 회관에선 외부에서 방문한 탐방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완도군은 해방 후 항일독립운동의 기록보존과 공원 조성, 위령탑 건립, 자료전시관 등을 추진해 선령들의 애국정신을 고양하고 있으나 우리 해남은 광복 이후 68년 만에 5000만 원의 작은 예산으로 합동추모비만을 건립했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늦다고 생각할 때가 그래도 빠르다는 격언처럼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몸 바쳐 투쟁하신 해남 327분의 항일 순국열사와 애국지사들의 나라사랑과 자기희생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해남 항일운동사를 발간해야 한다.

또 대흥사 심적암에서 참살당한 항일의병 66位의 유골을 발굴해 봉분함으로써 우리 후손들에게 값진 항일운동의 유산으로 물려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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