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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냐? 나도 아프다.”
김석천/전 교사  |  534023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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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06  16: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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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석 천(전 교사)

 30여 년간 우리나라 진보정당을 일궈왔고 노동자와 서민의 아픔을 함께 나누었으며 탁월한 정치 감각과 능변(能辯)으로 국민의 가슴을 시원케 했던 좋은 정치인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갔다. 애절함에 가슴이 무겁다.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자들은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호의호식하는데, 양심과 명예를 소중히 여겨 차라리 죽음을 택한 그분은 혼자서 얼마나 울었을꼬. 
신경림 시인은 ‘산다는 것은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 했다. 연약한 인간의 삶에는 시련과 비애와 아픔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한 삶의 무게를 견디기 힘든 까닭은 그 짐을 혼자서 져야 한다는 외로움 때문이다. 삶의 무게가 짓누를 때 짐을 나눠 질 이가 있다거나 함께 울어줄 이가 있다면 우리의 삶은 한결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마치 비 오는 날 함께 비를 맞는다거나 우산을 같이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프란치스코 교황에 얽힌 이야기다. 교황은 세월호 희생자의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하면서 세월호 추모의 상징인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았다. 돌아가는 길에 한 기자가 “교황의 행동이 정치적으로 오해될 것을 우려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교황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유족들과 연대하기 위해 이것을 달았다.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
풀꽃의 저자로 잘 알려진 나태주 시인은 “시인은 곡비(哭婢)와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세상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대신해서 울어 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그래 시인은 위로를 주고 기쁨을 주고 용기를 북돋우는 시를 쓰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함석헌 님도 학자 역시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대신 울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우리 주변엔 대신 울어주는 이들이 있다. 꽃은 봄을 울고, 천둥은 여름을 울며, 벌레는 가을을, 바람은 겨울을 울 듯이. 그들을 보고 들으며 공감하고 위로를 받고 때론 눈물을 흘린다. 마치 황량한 사막에서 산고에 지친 어미 낙타에게 들려주는 마두금 연주와 할머니의 노래가 낙타의 눈물을 여는 것처럼.
세상이 참 거칠어 애달프다. 시인이 아니더라도, 학자가 아니래도 풍진(風塵) 세상에서 대신 울어 줄 이들이 그립다. 그래서 대신 울어줄 어떤 이들을 기대하며 저마다 유리병 편지를 띄운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자크 루소도 말하기를 “함께 우는 것만큼 사람의 마음을 결합시키는 것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나 우리를 대신해 울어주기를 바랐던 통치자들은 기대를 저버렸고, 금배지를 단 이들은 국민의 아픔일랑 아랑곳없이 권력 쟁탈전이나 해대며 몰염치가 극에 달했다. 창고에 돈이 많은 이들은 그걸 권력 삼아 하나같이 갑질을 하고 비리(非理)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다. 비린내가 역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무색하다. 사회지도층은 당연히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하나 부끄러움조차 모르고 상황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색을 하는 모습이 참으로 볼썽사납다. 
이 시대의 석학 이어령 님은 정치를 거꾸로 읽으면 치정이 되고 치정 사건처럼 추문과 싸움과 파탄을 낳는다고 했던 것처럼. 
우리 군의 이야기를 해보자. 오랫동안 우리 군(郡)의 시계는 멈춰 있었다. 동력을 잃은 채 제자리만 맴돌았고 군수가 800명이라는 항간(巷間)의 소리처럼 주민들의 가슴은 탔다. 신임 군수가 "군민의 소리 듣고 또 듣겠습니다."라고 했으니 이번엔 새로운 해남을 기대한다. 
모두가 힘들고 아픈 세상이다. 우리는 힘들 때 함께 울어줄 자를 그리고 마음껏 울 수 있는 울음터를 원한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오래전 종영된 MBC 드라마「다모」의 명대사 한 구절이다. 이 짧은 대사가 잊혀지지 않는 건 너의 아픔을 나의 가슴에 공유한 인간미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우리들의 손으로 뽑아놓은 군의 수장이, 의원들이 그리고 공복(公僕)들이 우리가 아플 때 같이 아파해 주고 우리가 힘들 때 함께 울어주는 자들이었으면 한다. 
나아가 군 행정의 장(場)이 가슴에 쌓인 답답한 것을 풀어내고 주민들이 마음껏 울어볼 호곡장(好哭場)이었으면 한다.
시인이 대신 울어주는 존재이듯 당신들이 대신 울어주는 곡비이기를, 나아가 반려(伴侶)이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대의정치(代議政治)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그럴 때 군민들도 그들을 위해 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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