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교사(反面敎師)는 ‘극히 나쁜 면만을 가르쳐 주는 선생’이란 뜻으로, 중국에서는 제국주의자나 반동파 또는 수정주의자를 이르는 말이다. 군대에서 신참병이 고참병에게 불합리한 대우를 당할 때 ‘나는 고참이 되면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하거나 시어머니에게 구박받는 며느리가 ‘나는 나중에 며느리에게 인자한 어머니가 되어야지.’ 하는 것이 반면교사의 좋은 예이다. 하지만 대개 사람들은 미워하면서도 배운다고 하듯이, 반면교사를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성숙하는 계기로 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밑에 있던 사람이 권력을 잡거나 권좌에 오르면 더 가혹해진다는 말은 역사가 수없이 증언해왔기 때문이다.
6․2동시지방선거가 야당인 민주당의 승리와 여당인 한나라당의 참패로 막을 내렸다. 취임 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MB와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내려진 셈이다. 자본과 성장만을 향해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권력자를 국민은 반면교사로 삼았을까. 아무리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진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고 하지만 최소한의 상식도 통하지 않는 MB를 통해 소통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 떠올렸을 법하다. 소통(疏通)이 아니라 소통(小通)으로 지배하고 군림하려고 하는 불도저에게 브레이크를 달아준 셈이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체결하여 남북의 평화정착과 공존의 길을 모색하지는 않고 자꾸 골목대장(형님벌인 미국과 중국)에게 가서 구걸하는 모습에 국민은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젊은 아들 46명을 수장시켜 놓고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장관들이 사죄의 말 한 마디 없이 대북 제재와 전쟁을 선동하는 무능과 위선에 화가 난 것이다. 신라가 외세(外勢)인 당나라(중국)를 끌어들여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이후 우리의 영토는 축소되었고, 소중한 주권은 지금까지도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해방과 분단 후엔 미군에게 우리의 국토 수호 임무를 맡겨버린 역사도 부끄럽기 그지없다. 한마디로 자주국방은 허울뿐인 셈이다.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기간 북한에 지원한 돈이 5조원 남짓 한데, 1년에 10조원 이상을 미국에 퍼주면서도 더 못줘서 안달이 난 MB와 한나라당을 반면교사 삼아 국민은 한 표 한 표를 던졌다.
54.5%라는 지방선거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투표율을 국민은 보여주었다. 내게 주어진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얼마나 역사의 발전과 방향에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1649년 영국 왕 찰스1세가 단 한 표 때문에 처형되었고, 1766년 미국은 단 한 표 차로 독일어 대신 영어를 국어로 채택했다. 1875년 프랑스는 단 한 표 차로 왕정에서 공화국으로 바뀌는 새 역사를 시작했고, 1923년 아돌프 히틀러는 단 한 표 때문에 나치당을 장악하여 2차 대전까지 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6대 국회의원 선거 때 경기도 광주에서 세 표 차이로 당락이 갈렸으며, 지방선거에서는 강원도 원주시 개운동,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2가, 인천시 부평구 부평4동 등 8개 선거구에서 한 표가 당락을 갈랐다. 투표를 안 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인 ‘한 표 무용론’은 그래서 위험한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선 유난히 초박빙 승부가 많았다. 개표 시간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초 접전 지역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한 표 한 표가 소중하게 살아있는 나의 권리라는 것을 인식시켜 주었다.
MB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인터넷에 올라온 글이 문득 생각난다. ‘그가 불도저 CEO 출신이라서 두려운 게 아니다. 교회의 ‘장로’ 이승만이 대통령 때 북진통일을 외치다가 6.25전쟁이 터지자 부산으로 줄행랑을 친 것이나, ‘장로’ 김영삼이 대통령 때 IMF를 맞아 나라가 거덜난 것이 떠올랐기 때문에, 장로 이명박이 대통령 된 것이 두려운 것이다.’ 기우(杞憂)이길 바라지만 ‘한 표’ 차이도 아니고 사상 최다표 차인 ‘5백만 표’ 차이로 대통령이 된 MB와 한나라당이 앞으로 어떤 가공할 정책을 밀어붙일지 두려운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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