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천(전 교사)

 햇볕이 비켜 누웠다. 건삽한 갈바람이 들판을 노랑으로 덧칠하고 있다. 바람의 방향도 바뀌었다. 아침재를 헐떡이며 달려와 가을 향수를 뿌리고 지나간다.
추석이 가까워 오면 예초기(刈草機)를 짊어지고 구절초, 쑥부쟁이 흩어진 산비탈에 자리한 어머니 묘소(墓所)엘 오른다. 사람은 가고 없어도 꽃은 피었다. 산소에 오르는 에움길은 인적이 드물어 소조(蕭條)하다. 
묘지 주변엔 잡풀이 헝클어져 있고 봉분(封墳)은 듬성듬성 황토색 뱃살을 드러내고 있다.
나이 들어 내쫓기지 않아도 될 유일한 낙원은 추억이라던데 어머니 묘소에 설 때마다 회한(悔恨)이 가슴을 짓누른다. 
생전에 일구시던 땅에 묻히신 어머니, 누워계신 세월이 길어 삶의 터전이었던 흙과 하나가 되셨겠지만 잊고 살았던 지난 것들이 세월을 거슬러 귀환(歸還)한다. 주름진 얼굴과 거친 손이 살아 움직인다. 생전에 가슴을 아프게 했던 어머님과 나만이 아는 비밀한 일들이 죄인에게 선고(宣告)하는 법(法)조문처럼 조목조목 다가온다.
「이제,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피어나지 마세요. 지금 어머니를 심는 중…」
어머님을 여윈 애절함을 담은 문인수 시인의 하관이라는 시다. 
시인은 흙에 묻히는 어머니를 ‘묻는다’라는 동사 대신 ‘심는다’라고 표현했다. 심은 것은 언제라도 피어나게 마련이다. 
아직 철이 들지도 않았던 시절에 어머님과 이별 의식을 치렀다.
어머님의 흐느낌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시한부 생명이라는 선고를 받았던 날에. 어머니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투병하시던 어머님은 마른 장작개비 같은 몸을 뒤척였다. 링거액이 몸속으로 들어가지 않게 되던 날이 며칠 지나 하늘로 가셨다. 무지개다리를 건너가시는 것이 차라리 편해 보였다. 크리스천이었던 어머니의 관 위에는 ‘성도 고 박〇〇집사’라는 천 하나가 덮였다.
어머니는 그렇게 미답(未踏)의 세계로 가셨다. 눈물은 눈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아무와도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아픔이었다. 그리고 철이 들어 명절이 다가오면 어머님의 빈자리가 커 보이고 울컥울컥 애절함이 솟아오른다,
벌초를 마치고 묘지 옆에 누웠다. 삶과 죽음이 지척(咫尺)이다. 삶이란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는 것이요, 죽음이란 우산이 더 이상 펼쳐지지 않는 일이다. 오늘 저녁 일몰을 보며 내일 아침 일출을 기약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이어령 교수는 그의 저서 「지성에서 영성으로」에서 ‘죽음이 없이는 생명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분은 ‘메멘토 모리’ 곧 ‘죽음을 기억하라’ ‘목숨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의 기저귀를 차고 나온다. 죽는다는 걸 생각하면서 살라’라고 말한다.
곧 추석이다. 달이 커져갈 때면 어머니도 피어나고 허허(虛虛)함은 더한다. 나이테가 하나둘 늘어 갈수록 어머니의 깊고 미묘한 속뜻을 조금씩 알게 되고 애달픔도 시나브로 짙어져 왔다. 
이젠 어머니의 얼굴을 애써 그려봐도 희미한 그림자 같다. 
정채봉 시인의 시처럼 하늘나라에 계시는 어머니가 단 5분만 휴가를 얻어 온다면 원이 없겠다. 인간은 흙에 이르는 날까지 부모의 DNA를 품고 사는 모양이다.
흔히들 말한다. “부모의 사랑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다음에 안다”고. 누구에게나 그런 날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부모님 살아실제, 명절에라도 얼굴을 뵙는 것이 도리(道理)이며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설익은 도토리가 후드득 진다. 덧없는 세월을 풀잎 바람에 날려 보낸다.
나도 가을이다. 너도 곧 가을일 것이다.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라틴어:현재 순간에 충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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