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영 광주금방 정용석씨
45년간 손도장, 지금도 여전

▲ 요즘도 손도장을 새기는 우수영 광주금방 정용석씨가 조각칼을 이용해 손도장을 새기고 있다.

 우수영에서 광주금방을 운영하는 정용석(72) 씨는 지금도 손도장을 판다. 도장인생 45년, 이제는 눈도 침침하지만 여전히 기계 도장보다는 손도장을 고집한다. 
동네 사람들은 그의 도장 파는 손재주에 대해 후후 세 번 불면 도장이 뚝딱하고 나온단다.
또 이름이 외자면 딱 두 번 불면 된다고 농을 친다. 
그런데 요즘은 두 번이고 세 번이고도 안 된단다. 바로 우수영 근처에 사는 외국인들도 도장을 파기 때문이다. 이름도 요상하고 길기도 하다. 네 번 후후 불기도 하고 다섯 번 불어야 완성되는 도장이다. 많게는 여섯, 일곱 자까지 새기고 가지만 가격은 같다. 그래서 손해라지만, 어쩌겠냐고 정 씨는 되물었다. 
한번은 근처 식당에 밥을 먹으러 온 손님이 밥은 먹지 않고 헐레벌떡 정 씨의 금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요즘에도 손도장을 제작한다는 말을 듣고 기념으로 손도장을 만들어 가려고 찾아온 것이다. 밥도 잊을 만큼, 손도장을 제작하는 곳이 희귀해진 까닭에 일부러 찾아온 손님이다. 
보통 기계로 도장을 파면 수직으로 세워놓고 도장을 판다. 그러나 정용석 씨는 가로로 놓고 끌때로 밀고 조각칼로 새긴다. 정성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단다. 안타까운 점은 재료가 대부분 중국산이나 인도네시아 산이라는 점이다. 단가가 맞지 않아 더 이상 국내에서 ‘도장 나무’라 부르는 품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 씨는 조각을 누구에게 배운 것 아니다. 먹고 살 방편으로 생각한 것이 직업이 됐고, 이제는 손도장의 달인이 됐다. 
멀리서 온 사람 차비 빼주고, 가까운 사람은 알음알음 도장을 파주는 요즘에는 남는 것 없이, 딱 봉사정신으로 작업한다고 정 씨는 말했다. 궂은 일, 흥한 일을 동고동락하며 버텨낸 세월에 다들 하얗게 서리 내린 머리를 하고 있지만 도장으로 이어져 온 인연들이기 때문이다. 
정 씨는 도장업이 경찰서에서 관장하다 군 행정기관으로 이행된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우수영 울돌목을 흐르는 물길보다 더 많은 도장을 팠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 씨는 손도장뿐 아니라 손으로 하는 것은 우수영에선 유명인사다.
그중 진도나 우수영 바다 주변에서 주운 조막만 한 조각돌로 만든 공작도 있다. 검지만큼 작은 돌에 구멍 내 공작 깃털 무늬모양도 만든다. 그 모양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누구나 탐낸단다. 
정 씨의 다락방 진열장에는 그가 돌로 만든 공작 2000여 점이 빼꼭히 자리하고 있다. 살면서 하나둘 만든 것이 어느새 그만한 작품 수가 됐다. 
정 씨의 손은 조각으로 지문이 뭉텅해졌다. 하지만 정씨의 얼굴은 웃음으로 다듬은 세월 때문인지 어느 조각보다 밝다. 

 

김성훈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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