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석 천(전 교사)

 저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라는 시를 좋아합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고향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정겹습니다. ‘까마귀라도 내 땅 까마귀면 반갑고 고기도 저 놀던 물이 좋다’는 말처럼 고향이라는 말만 들어도 반가운 것은 고향은 태(胎)를 묻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고향은 기억의 유적지입니다. 요즈음 기억장치에 고장이 났음인지 엊그제 일도 아슴푸레합니다. 그런데도 예닐곱 살쯤의 아득한 옛일들이 잡힐 듯 떠오르는 것은 고향은 머리보다는 가슴에 있기 때문일 겁니다. 
세상은 많이도 변했건만 마음속의 고향은 변하지 않는 옛 모습 그대로입니다. 아이들의 소리가 골목에 가득했던 곳. “나하고 놀자!” 부르는 소리에 밥숟갈을 놓고 뛰어나갔던 기억이 선연한 곳이 고향입니다. 명절이면 고까옷 입고 송편 한두 개 손수건에 싸서 말뫼봉에 올랐던 추억이 아직도 꿈틀대고요. 저녁이면 고즈넉이 엎드린 초가지붕 박 넝쿨 사이로 하늘하늘 피어오르던 굴뚝의 연기는 얼마나 정겨운 모습이었던가요. 
저에게 남아있는 고향의 기억은 양지녘 햇볕처럼 따스합니다. 마치 연어가 제 몸을 상하면서까지 거친 물살을 거스르며 부모가 삶을 마친 곳, 동시에 자기가 태어난 땅을 찾아 회귀하는 것처럼 ‘어떤 그리움’이 서린 곳입니다. 
제 고향 마을은 말뫼봉 아래 미럭바우가 있는 비석등입니다. 그리 넉넉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한촌(寒村)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만은 풍성했습니다. 코흘리개 친구들이 고구마 하나를 나눠 먹으며 입맞춤을 했던 곳, 이웃집에서 제사라도 지내는 날이면 제사가 끝날 즈음까지 기다렸다가 ‘단자요!’ 소리치며 던져놓은 쪽지를 보고 이웃집 아짐이 음식들을 고루고루 싸서 토방에 내다놓곤 했었죠. 이호우 님의 ‘살구꽃 핀 마을’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 지고, 뉘 집을 들어서도 반겨 맞아주었던 곳입니다. 
세상이 하 변하여 이제 그런 고향은 모습은 유토피아(Utopia)처럼 회억에만 살아있습니다. 
세상살이가 갈수록 삭막합니다. 때론 모래뿐인 사막을 말벗 하나 없이 터벅터벅 걷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 품속 같은 옛 고향으로 회귀하고 싶은 마음은 꿈속에서도 고향 마을 뒷산을 배경으로 그려냅니다. 
시선(詩仙) 이백(李白)조차도 거두망산월 저두사고향(擧頭望山月 低頭思故鄕-머리 들어 산에 걸린 달을 바라보다가 고향 생각에 고개 숙어지네.)이라고 했으니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고향의 DNA를 품고 사는가 봅니다.
추석을 앞두고 부모님 묘소 별초를 하기 위해 찾았던 고향은 가슴에 그리던 고향이 아니었습니다. 고향도 나이를 먹었습니다. 익숙했던 지형이 생경했습니다. 
옛 모습은 세월에 풍화되어 허허(虛虛)하고 부모님 묘소엔 잡풀만 울연(蔚然)했습니다. 고향의 추억은 땅보다는 사람이라던데 내 어릴 적 건장했던 청년은 물음표처럼 등이 굽어진 비영비영한 노인이 되어 있었고 어른이 되어서 만나자며 손가락을 걸고 이름을 새겨 놓았던 오동나무는 지금은 어디 사는지조차 모르는 친구처럼 흔적도 없었습니다. 
허물어진 고향의 돌담처럼 무너지고 부스러진 건삽한 세상에서 촉촉한 고향의 냄새가 늘 그립습니다. 세상이 힘들수록 고향은 더욱 짙게 회억되나니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물기 촉촉한 회억이 아련한 고향은 이제 돌아갈 수 없는 마음의 이상향일 뿐이지만 고향이 저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기에 고향은 낙원입니다. 세상이 복잡할수록 고향의 편린들은 꿈틀거리며 되살아납니다. 스마트한 세상, 디지털 속도로 달려가는 고단한 세상에서 고향은 쉼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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