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산면 용두리 출신 윤권철 향우
입소문만으로 하루 4~5건 요청도

▲ 윤권철 향우

 “나는 한마디로 해남 촌사람, 민초 중 민초이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향우가 그동안 서울에서 주례를 맡은 부부는 590쌍, 유명 정치인도 아닌 그가 그 많은 주례를 맡게 된 것은 입소문 때문이다.
삼산면 용두리 출신인 윤권철(76) 향우는 서울 구로3동에서 50년간 거주하며 민초당한의원을 경영했다. 지금은 경영에서 은퇴했지만 주례 내용이 너무도 감동적이다는 소문이 나 하루에 4~5회의 주례 부탁을 받은 일도 허다했다.
윤 향우가 주례를 처음 맡았던 것은 1988년 3월6일 안산 반월공단 제1예식장에서 신랑 나응열, 신부 정희숙 씨이다. 이때 주례는 신부와의 친척 관계여서 이뤄졌다. 그런데 주례내용이 너무도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여기저기서 주례부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생면부지 사람들의 부탁을 받고 서는 주례 횟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고 혼인의 계절이 오면 하루에 4~5회 주문도 들어왔다. 그럴때면 다른 사람을 소개하지만 어느덧 590쌍의 새 출발을 밝히는 기록을 갖게 됐다.
주례 선생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데에 대해 그는 “해남 촌사람이 주례를 선다는 것 자체가 황송했다. 그래서 시골 출신으로서 꾸밈없는 주례, 행복한 가정, 부모님께 효도하고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내용을 솔직 담백하게 풀어내고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이에 주변에서는 해남윤씨 반가의 후손이라는 입소문과 함께 검소하고 예의바른 일상생활이 알려진 점도 한 몫한다고 귀띔했다.
그의 주례는 숙연한 감동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이 시작되기 전 오랜만에 만난 친인척으로 소란스러운 예식장, 그런데 그의 주례가 시작되면 장내가 숙연해진다고 한다. 이는 주례내용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서로간 감동의 피드백이 된다는 의미이다.
590회의 주례를 서기 위해 서울 곳곳을 누볐다는 그는 그동안 주례를 맡은 청첩장과 신랑신부, 부모의 내력을 적어 놓은 노트를 자신의 보물 1호라고 말한다. 또 주례 횟수가 늘어난 만큼 동네에 나가면 인사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한마디로 구로3동의 유명인사가 된 것이다.
기억에 가장 남는 신랑 신부는 광명시 시민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던 정신지체 장애자 신부의 행복해 하던 모습이다고 밝힌 그는 삼산초등학교와 해남중을 졸업했고 1970년 초에 상경해 구로구 오류동에서 민초당한의원을 운영했다. 민초당한의원은 그의 호인 민초를 따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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