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상 희(화산 한국의원 원장)

 가을비가 내린다. 갑자기 비가 내려 비설걷이가 바빠진다. 대흥사 가을 단풍색이 더 볼만 하겠다. 아침 비 섞인 바람이 거리의 낙엽을 쓸고 있다. 시집 한 권이나 소설책 한 권을 들고 밖으로 나가볼 마음이 든다. 어디로 갈까? 문학기행은 어떨까?
문학은 무엇인가?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학은 도시의 자존심이다. 문학은 도시에게 보다 품위있는 자존심을 안겨준다. 
제임스 조이스는 작고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지금 세계의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의 시와 소설을 좋아한다. 그는 37년간이나 자신의 조국에서 쫓겨 망명 생활을 하였으나 거의 모든 문학의 배경은 자신의 조국과 어린 시절 살았던 아일랜드의 더블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의 문학은 일찍이 없었던 의식의 흐름과 내면의 흐름이라는 독특한 기법을 사용해 우리가 잘 아는 버지니아 울프나 월리엄 포크 등 지금까지 전 세계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장편의 시 율리시즈에서 언급한 지명과 카페, 음식점, 공공기관들은 모두 관광명소가 되어 그가 죽은 지 70년이 넘었지만 매년 백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아일랜드는 작지만 걸출한 작가를 배출한 나라이다. 오코넬 스트리트는 제임스 조이스의 전신 동상이 서 있는데, 더블린 시민의 자존심이다. 
해남은 해남의 자존심을 두고서 방기하고 있다. 해남 번화가에 김남주 거리, 고정희 거리를 만들고 그들을 기념하는 장소나 기념물을 세워야한다. 어린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해남에 사람이 있었다는 걸 배우고 자긍심을 가지고 타지에 나가 공부하면서 서러움 없이 학문에, 생활에 열중할 수 있을 것이며, 일찍이 문학에  눈을 떠 김남주와 고정희의 시를 읊조리다 그들을 뛰어넘는 세계적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드라마  '은주의 방'에서 보듯이 고된 삶을 살아가는 은주꼴의 사람들의 삶을 뒤돌아보게 하고 위로, 격려하며 슬픔을 이겨내게 한다. 그리고 새벽안개 너머로 불가능하게 보이는 아련한 도시를 건설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준다. 한 권의 위대한 책은 위대한 도시를 만드는 배경이다. 책을 읽으면서부터 미래의 도시는 구상되는 것이다.
여기, 지금, 해남에 살아있는 위대한 작가가 있다. '후여 후여 목청 갈아'의 윤재걸,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의 황지우. 걸어 다니는 위대한 책 두 권이 해남의 산골에 묻혀있다. 왜 그 걸어 다니는 책을 펼쳐보지 않는 것인가. 그들이 살아온 길에 개인적 불찰의 소지도 있겠으나 과는 공을 덥지 못한다. 해남 문학의 미래가 여기 존재하고 있다. 기회는 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유배의 땅, 반항의 땅 해남을 해방시켜줄 스승이 살아 있다.
작은 나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제임스 조이스를 기념하는 블룸스데이(Bloom's day)가 있다. 전 세계에서 그를 기념하기도 하지만 직접 더블린으로 날아가 기념식을 참가하는 사람들이 수 십만이라 하니 걸출한 문학인 한 명이 일으킨 산업의 효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 IT산업이라 할 만할 것이다. 머지않아 해남에도 기차가 지나가고 기차역이 들어서게 된다. 외지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그냥 지나가게 할 수는 없다. 해남의 자존심을 보기위해 그들을 해남역에서 내리게 해야 한다. 김남주 거리와 고정희 거리에 윤재걸 카페와 황지우 카페를 만들어야 한다. 가을의 낙엽이 뒹구는 대흥사 숲길을 걷다가 거기서 놓친 질문들을 두 카페에서 사람들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누가 뭐라해도 김남주, 고정희, 윤재걸, 황지우 그들은 해남의 자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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