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태정/땅끝문학회 회장

 이비인후과 의자에 앉으면 사실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의사가 잘 아는 선배다보니 자상한 설명에 조금 안심이 되는 구석은 있지만 두려움이 다 가시는 건 아니다. 모니터에 내 귓속이 적나라하게 보이는데, 한 달을 다니다 보니 모니터를 보면서 거의 반의사가 되었다. ‘음, 또 고막으로 주사기가 꽂히겠군’하면 어김없이 주사기가 귓구멍으로 들어왔다. 고막으로 주사기가 꽂히면 그 순간은 따끔할 뿐이다. 그러나 고통은 그 다음에 왔다. 연한 귓속을 다 끄집어 낼 듯 흡입하는 주사기의 힘 앞에 두 손을 부르쥐고 안간힘을 써야 했다. 얇은 고막이 찢어질까봐 움직일 수도 없었다. 사실 겪고 싶지 않은 고통스런 순간이었다. 
네 번째쯤 병원을 갔을 때였다. 내가 느끼는 귓속 상태나 모니터에 나온 것이나 틀림없이 또 주사기를 꽂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선배의 손을 보니 간호사가 건넨 주사기가 들려 있었다. 
“형님 잠깐요. 준비 좀 하구요.”
“그래, 좀 힘들지? 알았어. 준비해라.” 난 몇 번의 심호흡을 하고 난 뒤 의자 팔걸이에 손을 얹고 주먹을 쥐었다. 
“됐습니다”
간호사가 뒤에서 내 머리를 꼭 잡았다. 주사기가 꽂혔다. 
“으으으”
그렇게 귓속을 긁어내 듯 하던 주사기가 빠져 나갔다. 갑자기 귀가 뻥 뚫리면서 어지러워졌다. 뻥 뚫린 귀로 치료과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그러나 그 뒤로 선배는 내가 심호흡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무런 예고 없이 주사기가 고막을 뚫고 들어왔다. 어찌 보면 그게 더 나을 성 싶기도 했다.
내 귀가 거의 나아갈 무렵의 일이다. 간호사가 나보다 앞서 왔던 사내와 나를 동시에 불렀다. 난 느긋하게 대기용 의자에 앉아서 앞선 사내의 치료 과정을 지켜보았다. 모니터를 보니 나와 똑같은 증상이었다. 고막 안쪽의 유스타키오관이 막혀 물이 차는 현상이었다. 고막 안쪽이 검푸른 빛이었다. 나와 똑 같은 증상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넌 인제 디졌다. 조금 있으면 아마 주먹을 부르쥐겠지? 흐흐. 내가 그 방면엔 네 선배다. 흐흐’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 사내가 겁먹지 않으면 어쩌지? 아파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조바심이 일었다. 적어도 내가 느낀 통증 정도는 저 사내도 느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나만 겁쟁이로 전락하는 셈이었다. 
선배가 어떻게 귀에 주사기를 꽂는지 지켜보았다. 내가 당할 때는 보이지도 않는 위치일 뿐더러 난 힘을 주느라 아예 눈을 꼭 감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기다란 주사바늘이 달린 주사기가 사내의 귓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선배는 엄지손가락만으로 주사기 피스톤을 뽑아 올렸다. 주사기를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키기 위한 동작 같았다. 아주 능숙하고 숙련된 솜씨였다. 간호사가 사내의 머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 짜식 무섭지? 아프지? 흐흐. 다 그런 거야 임마.’ 사내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난 나 혼자만 당하는 게 아니라는 것에 내심 흐뭇했다. 사내가 비틀거리며 주사실로 들어갔다. 
간호사가 나를 불렀다. 이제 내가 주먹을 부르쥘 차례가 되었다. 웃음이 싹 가셨다. 부들부들 떨고 난 뒤 사내가 지나간 길을 따라 비틀거리며 주사실로 향했다. 병원을 나와 약국에 갔더니 또 그 사내는 그간 내가 먹어왔던 것과 똑 같은 약을 받아들고 약국을 나서고 있었다. 축 처진 어깨를 보니 더 이상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 너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난 마음으로 사내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너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면 세상은 다툴 일도 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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