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호(청년국악인)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봄은 찾어 왔건만은…’
단가 '사철가'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추운 겨울 내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에 새봄이 찾아왔다. 판소리를 부르기 전,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단가'처럼 우리도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동안 새로운 시작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준비를 한다.
드디어 3월, 다시 배움의 길로 들어선다. 국악이 아닌 다른 분야지만 내가 많은 것을 알고 경험해야만 내 자녀들에게 더 넓은 세상과 가치에 대해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큰 아이도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각자의 설렘과 기대도 있지만, 아빠는 아이가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엄마는 잘 준비를 해서 학교를 보낸 것인지, 우리 부부는 늘 걱정이 앞선다.
내 부모님은 내게 어떤 교육을 했는가? 물론 힘든 과정도 있었지만 국악을 접했고, 원하는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지금 행복하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인생은 짧다. 너희 아버지도 젊은 나이에 하고 싶은 것을 못하시고 돌아가셨으니, 하고 싶은 공부는 무엇이든 시작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한 달에 한번, 친구들을 만난다. 요즘 만나면 자녀교육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너는 하고 싶은 것을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러면서 우리는 왜 야간 자율학습을 열심히 했는지 모르겠다” 고 친구들이 농담 삼아 말했다. 
돌이켜보니 나의 재능을 일찍 발견해 주시고, 내 진로 방향을 잡아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그러면서 두 아이의 아빠로서 아이의 교육을 생각한다. 내 자식이 소중하기에 남의 자식도 소중하다는 사실은 알지만 현실에선 곧잘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내 아이가 적어도 공부만큼은 잘해 주길 바란다. 그러면서 내 자식만은 최고가 돼야 한다고 감싼다. 
교육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및 바람직한 인성과 체력을 갖도록 가르치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이라 정의한다. 다시 생각해 보면 내 자식만 눈에 보이면 그것으로부터 교육은 무너지고 함께 사는 공동체도 무너지지 않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혼자만 잘나서 사는 것이 아니다. 교육은 함께 사는 사회의 일원으로 키워내는 것이지 않을까.
부모들은 자식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주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가르치려 한다. 그런 아이들은 부모가 이미 고른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기 위해 힘들어 한다.
1989년 개봉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영화는 대한민국의 입시위주 교육현실을 잘 꼬집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영화가 비판한 교육현실은 30년이 지나 “SKY캐슬”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2019년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줬다.
입시위주의 교육 현실에서 홀로 네 남매를 국악인으로 키운 어머니가 우선으로 판단했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자식의 행복이었다. 나는 자식의 행복을 위한 길을 걸었던 어머니의 교육 방법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자식을 위한 부모의 헌신과 사랑은 절대로 자식이 비뚤어진 길을 가지 않게 한다. 부모 자식 간의 믿음은 힘든 일이 닥쳐와도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처럼 자식을 보호해 줄 것이다. 교육에는 정답이 없다. 나는 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그 과정에서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 삶을 꾸려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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