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 상 금(전 서울시의원)

 전국 각처의 출향 향우에게 법정스님은 자존심이다. 오래전 여러 지역 출신 지인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해남군의 잦은 군수 공백에 대한 비난이 화제가 되자 나는 “군수야 어떻든 법정스님이 내 고향 해남사람이야”하고 큰소리친 적이 있다. 
법정스님은 문내면 선두리에서 1932년에 출생. 22년을 박재철이라는 속명으로 살았다. 우수영초등학교, 목포상업고등학교, 전남대학교 상과대학 3년 수료 후 통영 미래사에서 당대 최고의 고승 효봉스님을 만나 출가했다. 그리고 2010년 3월11일 입적했다.
다비식이 있던 날 방송과 신문에서는 여느 장례식과 비교하면서 임종계(스님의 입적전 계송), 수의, 관, 만장뿐만 아니라 추모사마저도 한마디 없었다고 전하면서 생의 마지막까지 무소유를 실천했다고 말했다. 법정스님은 법람55년 동안 강원도 산골과 송광사 불일암에서 오두막을 짓고 손수 텃밭을 가꾸어 밥을 지어 먹으며 오직 “무소유”를 화두로 맑고 곧은 삶을 견지했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무엇인가에 얽매이게 된다”라는 말로 소유에 대한 집착이 자유를 늘리기 보다는 부자유에 갇히게 된다는 지혜를 깨우쳤다.
뿐만 아니라 겉치레와 형식을 탈피하고 지위를 초월해 행정이나 자리를 멀리했다.
그러나 불교신문사 논설위원과 주필 그리고 함석헌, 장준하와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 참여와 유신철폐 개헌서명운동에는 참여했다. 스님의 30여권의 저서 가운데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무소유」는 180쇄라는 기록에 340만부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스님은 「무소유」에서 어린왕자를 수십 번 읽었다고 전제하며 이렇게 적었다. “어린왕자! 너는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더구나. 이 육신을 묵은 허물로 비유하면서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더구나. 삶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일이요, 죽음은 한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구나” 
성철스님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설법으로 존재와 분수에 대해 깨우칠 때 법정스님은 무소유를 강조했다. 자칭 바보 김수환 추기경도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라고 한말은 유명하다. 입적 후 불교 조계종에서는 종단의 최고 법계인 대종사를 추서했다. 대종사는 승람 40년 이상에 수행력과 지도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부여한다.
스님의 가르침이 그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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