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정 섭(전 해남읍지편찬위 부위원장)

 2017년 3월 해남읍지편찬위원회를 발족하고 그 안에 운영위원회, 편집위원회, 집필위원회, 마을사조사위원회 등을 두고 2년여 각고의 노력 끝에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기록한 해남읍지 출판사업이 2019년 2월22일 출판기념회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조선조 세종 19년(1447) 해남현의 치소가 설치되고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해남면이 탄생한 햇수로 보면 105년 만에, 1955년 해남읍으로 승격된 햇수로 보면 64년 만에 처음으로 해남읍지가 창간된 것입니다.
상권 475쪽, 하권 465쪽 2권으로 출간된 이번 읍지에는 해남읍의 근현대사, 환경, 지방자치와 행정, 지역개발과 산업경제, 문화관광, 체육, 종교, 보건복지, 교육기관, 인물, 마을사, 부록(사진으로 보는 해남읍의 어제와 오늘, 해남읍 연표)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특히 이번 읍지에는 전·근대사 역사 기술 뿐 아니라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고사와 민속설화를 망라해 누구나 알고 싶고, 읽어보고 싶은 내용으로 꾸며 타 지역 역사기록과는 차별화를 시도했습니다. 
1971년부터 시작한 새마을운동은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가난을 숙명처럼 체념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우리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는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 정신으로 똘똘 뭉쳐 마을의 환경을 개선하고 생산기반과 소득기반을 조성해 획기적인 성과를 거둔 민족중흥의 운동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정리된 자료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단편적인 자료들만 모아 보완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라는 새마을 운동 노래를 부르면서 일과를 시작했던 사람들로서는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해남은 차의 성지라고 합니다. 다성 초의선사가 일지암에 주석하시면서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위당 신관호 등 당대를 대표하는 지식인들과 교유하며 『동다송』, 『다신전』 등의 노작을 펴내 조선조후기 침체된 차문화를 중흥시켰기 때문입니다. 
차의 정신문화가 태동된 해남을 차의 종가 또는 성지라 부릅니다. 이처럼 소중한 문화자원이 있음에도 역대 세 번이나 발행된 해남군지에 누락돼 있었습니다. 읍지에나마 실을 수 있어서 다행스럽게 여깁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100여년 만에 처음으로 발간한 읍지이다보니 자료발굴에 한계가 있었고 또 찾을 수 있는 자료가 있음에도 마땅한 필진을 구하지 못해 사장시켜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난 2년여의 기간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문헌을 고증하는 등 사력을 다했지만 어디엔가는 오류도 있을 수 있고 누락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를 발견하신 읍민께서는 서슴지 마시고 제보를 해주셔야 다음 읍지에 바로 잡을 수가 있습니다.
역사는 있었던 일만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있었던 일을 평가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발전된다고 합니다. 과거는 현재로 이어지고 다시 현재는 미래를 만들게 됩니다. 다음 읍지가 언제 발간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의 후손들에게 내 고장의 과거와 현재를 알게 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지침이나 교훈을 줄 수 있는 생명력이 충만한 읍지가 돼야 할 것입니다. 
어려운 일일수도 있습니다만 조선시대 사초처럼 다음 읍지에 수록해야할 자료를 그때그때 기록하는 방안은 없을까 생각해봅니다.
 지역개발사업 추진과정에서의 착오나 실수 또는 난제를 극복하고 해결한 성공사례, 지역사회 민초들의 삶에 크게 영향을 준 숨은 이야기, 인물중심의 기록만이 아닌 그 인물이 성공하고 실패한 족적 등 스토리가 있는 읍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행정체계 속에 전담부서 아니면 전담인력을 두어 그때그때 기록해둔다면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랑스러운 역사의 기록이 되지 않을까 싶어 감히 제안해봅니다.
끝으로 지난 2년여 동안 성원을 아끼지 않으신 읍민들께 감사드리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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