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 선생이 해남을 다녀갔다. 그의 뿌리 찾기의 일환이었다. 고조부, 증조부, 조부의 묘가 해남에 있고, 증조부는 연동에서 살았으며, 조부는 계곡면 성진리와 당산리에서 살았다. 부모 또한 한때 계곡면 성진리에서 살았으니 그가 고향이라고 하는 것은 맞는 말임에 틀림없다. 
하버드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도올 선생은 논어, 중용 등의 강의로 일찍이 인문학의 지평을 열었던 우리시대의 석학이다. 그는 최근 동학, 여순사건 등의 전라도 정신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는 그의 뿌리와도 연관이 깊다. 
그의 조부가 살았다는 계곡면 당산리에는 원형이 크게 훼손되지 않은 집이 남아있다. 그는 이 집을 찾아 감개무량하다며 이 집이 곧 자신의 뿌리라고 말했다. 
그는 이곳을 도올서원으로 꾸며 방학을 이용해 우수한 학생 30여 명을 선발해 전라도 정신에 대해 강의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고흥은 ‘조종현·조정래·김초혜 가족문학관’을 지난해 개관했다. 소설가 조정래의 부친인 조종현 시인의 고향이 고흥이었기 때문이다. 조종현 시인과 연계해 아들 조정래, 며느리 김초혜까지 2대를 기념하는 문학관을 조성한 것이다. 부친보다 저명한 소설가 조정래와 시인 김초혜는 고흥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부친의 고향이라는 연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이처럼 각 지자체는 지푸라기만 한 인연의 끈만 있어도 이를 적극적으로 유치해 문화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해남은 10여년 전부터 도올을 유치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었다. 그러나 군의 적극적인 의지가 없어 유야무야 됐던 것이 현재까지의 모습이다. 
도올 선생의 뿌리 찾기에서 드러난 너무도 확실하고 구체적인 조상들의 발자취를 보면서 이에 대한 보존과 관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도올을 위해 거창한 기념관을 짓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또한 원하는 바는 아닐 터이다. 서울에서도 바쁜 그가 해남으로 내려와서 기거할 것 같지는 않다. 그가 원하는 것은 도올서원이었다. 다만 그가 조심스러워 하는 것은 지자체의 일관되지 못한 행정이었다. 군의 적극적인 의지가 해남을 향한 그의 발걸음을 잦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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