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권 철(해남윤씨 중앙종친회장)

 4월16일은 세월호 사고 5주기이다.
5년 전 4월16일은 새벽부터 모든 TV 방송은 서서히 기울어가는 세월호 모습뿐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날 그때를 생각하면 분하고 억울하다는 생각뿐이다. 476명이 탄 여객선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데 대통령을 비롯해 국가는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304명은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됐을까? 
며칠 전 모 일간지에 당시 배가 기운 정도와 시간을 분석한 시뮬레이션 결과에 의하면 476명 모두 탈출하는데 5~10분이면 충분했었다는 모 연구소의 연구 결과와 사고 당시의 영상이 찍힌 블랙박스가 조작됐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나를 또다시 분노케 했다. 
이와 같이 세월호 사고는 인재임이 드러나는데도 유가족이 줄기차게 요구하는 사고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지지부진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살아남은 자, 즉 304명의 유가족이 겪는 슬픔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이다. 
러시아의 문호 안톤체호프의 단편소설「슬픔」은 그야말로 슬픔에 관한 이야기다. 요즘의 택시처럼 마차로 손님을 태워주고 먹고사는 마부가 어린 아들을 잃은 후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이 줄거리다. 
마부는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아들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주님의 뜻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렇지만 혼자서 죽어 간 아들을 생각하면 너무 끔찍해서 마차를 몰고 가면서 손님과 아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원하지만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관심하다.
아들을 잃은 마부는 혼잣말로 이렇게 속삭인다. “혼자 있을 때는 아들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다.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는 아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지만 혼자서 생각하거나 아들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견딜 수 없이 두렵다”
소설「슬픔」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미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견디는 인간의 모습이다. 
마치 세월호 유가족에 대해서 “아픔을 같이한다. 공감한다.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외면하고 무관심한 것과 같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혼자일 때는 슬픔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을 누그러뜨릴 수 없다. 누군가와 더불어 충분히 녹여낼 수 있을 때만 치유와 회복이 가능한 메커니즘이다. 그러므로 세월호 유가족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상처가 아물 때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듣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슬픔을 견디지 못해 말을 거는 유가족을 향해 “이제 지겹다 그만하라”고 윽박지른다. 
국회 국정연설장으로 행해 가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슬픔과 아픔을 들어 달라고 절규한 유가족을 대통령은 왜 그냥 지나쳤을까? 
또 관계자들은 왜 서둘러 귀를 막았을까? 그들은 아직도 그들이 겪고 있는 슬픔을 충분히 토해내지 못해 답답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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