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승 미(행촌문화재단 대표)

 지난 주말 이른 아침 두륜산 대흥사 일지암에서 작은 공연이 있었다. 
농익은 소리로 좌중을 쥐락펴락하는 이병채 선생은 옷을 잘 차려입고도 직접 북채까지 잡아가며 멋진 공연을 해 줬다. 단가 사철가와 흥타령 수궁가, 진도 아리랑이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이른 아침 뜻밖의 일지암 공연을 마주한 30여 명의 여행자와 지나던 등산객들은 그들만을 위한 공연에 흠뻑 취했다. 소리가 아리랑을 넘어갈 즈음에는 모두의 어깨가 들썩 들썩인다. 임권택감독의 영화 서편제 한 장면보다 더 아름다운 봄날의 호사다. 
격동의 세월을 고스라니 살아온 어른들은 판소리 가락이 더욱 애절하다. 공연이 끝나고 산을 내려오며 여행객들에게 해남여행 소감을 물었다. “잘 대접받고 갑니다”, “가을에 또 올게요”.
이번 해남여행은 전통문화체험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그러나 10분의 1도 채담아 보내지 못한 아쉬움과 여운이 남는다. 
보통 여행은 젊은 사람들이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이 배낭 메고 해남터미널에 삼삼오오 모여드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울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전통을 찾아 해남까지 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해남에 젊은이들을 위한 ‘새로움’, ‘모험’, ‘격렬함’, ‘열정’ 코드를 가진 여행을 구성하려면 매우 다른 발상이 필요하다. 현재 해남 ‘여행’ 인프라는 매우 훌륭하다. 
매년 300만이 찾는다는 일본의 작은 섬 나오시마에도 없는 해남만의 매력이 있다.  
40여 년 전 너나없이 자가용도 없고 해외여행도 가능하지 않았을 때 해남은 젊은이들에게 색다른 여행의 진원지였다. 모더니즘의 시대가 가고 민중의 시대를 여는 ‘전통의 재발견‘이 화두이던 때다. 그중에서도 예술적 역사적 가치가 높은 전통문화유산의 보고가 해남이었다. 당시 30대 후반의 젊은 이태호·유홍준 교수가 꾸린 문화유산 답사의 시작은 해남 강진일대에 많은 대학생과 예술가들이 모여들게 했다. 젊은이들은 그 후로 영역을 넓혀 경주로 공주 부여로 떠났고 몇 년 뒤에는 해외여행 자유화에 힘입어 아시아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좀 더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일본과 유럽으로 문화유산 혹은 예술답사는 확장되고 지속됐다. 문화유산답사의 진원지 해남은 소수에게만 남았다. 그러나 여전히 중요한 문화유산으로의 자리는 그대로다. 
매 10년마다 끝자리가 7이 되는 해에 ‘유럽 그랜드 아트 투어’가 있다. 참가비가 1인당 무려 1000만원 가까이 필요하다. 이태리 베니스비엔날레, 독일 카셀도큐먼트를 비롯해 아프리카를 마주한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까지, 그랜드투어는 갈수록 확대돼간다. 세계적인 그랜드투어에 발 걸치기 위해 유럽의 도시들은 다투어 예술행사를 개최한다. 씀씀이가 큰 사람들이 예술을 만나러 유럽을 종횡무진 한 달 가까이 여행한다.       
다시 해남으로 돌아와 잠시 ‘관광’ 보다 해남의 전통문화에 충실한 ‘여행’을 생각해본다. 여행의 기본은 먹고. 자고. 이동. 그리고 +α다. ‘유럽 그랜드 아트투어’의 +α는 ‘예술’과 ‘유럽’이다. 
문화유산의 보고, 그러나 시절이 변한 해남여행의 +α는 무엇이어야 할까? 그동안 해남을 다녀간, 그리고 다시 오고 싶어 하는 수많은 참여자가 이미 알려줬다. 해남여행의 +α는 바로 ‘대접’이다. 
해남의 땅과 바다 그리고 농부의 정성이 담긴 재료로 만든 ‘남도 한상’. 여행자를 위해 천 육백년을 기다린 듯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대흥사와 하늘아래 가장 아름다운 미황사, 언제 보았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은하수가 보이는, 총총한 별이 하늘에 가득 찬 밤하늘. 청명한 공기와 나뭇잎 사이를 빠져나가는 바람소리는 음유시인의 노래와도 같다. 단순하고 맑게 살기를 권하는 일지암. 600년을 이어온 가문이 살고 있는 푸른 비가 내리는 눅우당. 그 집에서 시작된 남도 수묵의 기품. ‘차’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선동 한옥 집을 짓고 여행자들에게 차를 대접하는 사람. 삼대를 이어 막걸리에 해남의 햇살과 바람 그리고 넓은 땅을 담고자 하는 사람. 그리고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여행자들을 위해 북채를 잡고 소리를 들려주는 사람. 이 모든 것이 여행자를 ‘대접’하는 해남의 남다름, 오늘 다녀간 여행자를 다시 오고 싶도록 하는 ‘해남의 +α’ 는 바로 해남 땅의 역사와 문화 예술 그리고 전통이 담긴 ‘해남풍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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