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추정남 선생님을 떠나보내며-

▲ 박준호(청년국악인)

 대한민국 국악계의 큰 어른이셨던 추정남 선생님이 지난 17일 소천 하셨다. 
그는 명고수 이전에 한 가정의 아버지, 그리고 내게는 국악인의 길을 걷게 해준 스승이셨다. 
“소년명창은 있어도 소년고수는 없어야. 그만큼 고수는 어려운거여. 느그들은 이마빡에 북이라고 딱 써져있응께 오늘부터 내가 느그들 키울란다. 열심히 안 하믄 호되게 혼낼 것잉께 정신 바짝 차려!”
손에 북채를 쥔 스승은 소리북보다 작은 쌍둥이형제를 근엄하게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내게 “허리는 바르게 피고, 왼손은 이쁘게 모으고, 합이랑 각은 씨게 쳐라”고 강조하셨다. 
그러면서 시선은 소리꾼의 입을 보며 집중해서 북을 치라고 일렀다. 탄탄한 기본기를 통해 소리를 받쳐주는 것이 고수의 근본적인 역할임을 알려주셨다.
선생님을 생각한다. 항상 북을 칠 때 집중하라는 말씀은 단순히 북치는 행동만을 일컫지 않았다. 집중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1994년 6월, 해남읍 남외리 은혜그리스도교회의 긴 골목길을 지나 도착한 곳이 추정남 선생님 댁이었다. 
그로부터 25년간 지속된 사제지간의 인연은 북 잘 치는 고수의 길보다 사람다움이 무엇인지,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정신력은 무엇인지, 선생님은 아주 긴 호흡을 조율하며 나를 가르치셨다.
“열심히 살아라. 남한테 손가락질 받을 행동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선생님의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거창하지도, 세세하지도 않은 딱 추정남 선생님 같은 말씀이었다. 홀로 외로이 남도 국악의 맥을 이으며 추정남류의 고법을 창시한 입지적 인물의 말씀이라기엔 조금은 밋밋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의 말씀보다 선생님의 전성기 시절 소리와 북가락을 배우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온 수많은 제자들이 문지방을 넘나드는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선생님의 마지막 가르침은 그대로 선생님의 삶이었다.   
선생님은 해남이 고향이고, 일평생 해남에서 국악의 맥을 지키셨다. 제자인 내가 고향에 돌아왔을 때, 선생님이 고향 땅에 계셔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힘이 됐다. 
5일장을 치루고 난후, 선생님이 내 딸 은형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봤다. 스승이 제자를 길렀고, 그 제자가 자식을 낳고 둥지를 튼 해남, 그런데 이제 스승은 안 계신다. 떠난 스승은 정말 마지막으로 내게 자연의 순리를 알게 하셨다. 삶이 무한하지 않기에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스승의 큰 가르침이었다. 스승님은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하지만 스승의 소리와 북소리는 여전히 내 귓가에 쟁쟁하다. 
오늘도 나는 북을 친다. 북을 한 번 울리는 건, 스승을 그리워하는 나의 마음이고. 북을 한 번 더 울리는 까닭은….
어느덧 나도 제자를 기르는 나이가 됐다.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도 됐다. 
이제 스승의 북소리는 전국 각지의 수많은 제자들이 잇고 있다. 해남에서 제2의 추정남을 길러내야 한다. 
사회적 제도를 만들지 않고, 또 한 사람의 헌신으로 고법정신을 계승하라는 것은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북을 한 번 더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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