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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다빈치가 있다면 한국엔 공재가 있다
윤권철/해남윤씨 중앙종친회장 직무대행  |  534023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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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03  16: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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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권 철(해남윤씨 중앙종친회장 직무대행)

 나는 부모님 특히 아버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살았음을 아버지 장례식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하물며 제아무리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몇 백 년 전의 선조에 대해서 무엇을 얼마나 알 수 있겠는가.
그런데 호남의 명문가 해남윤씨 중앙종친회장을 맡고 보니 고산 윤선도와 그의 증손 공재 윤두서에 대해 평균수준의 상식을 벗어나지 못함이 직계 후손으로서 심히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고자 지난 주말인 5월18일에 종친회 임원 네 사람이 고산 유물전시관 문화강좌 ‘조선 후기 선비 그림의 선구자 공재 윤두서’에 참석했다. 
주말 오후 비까지 내리고 있어 귀향하는 차 안에서 수강인원이 몇이나 될까 염려했는데 유물전시관 영상실에 마련된 50여 석의 의자에 빈자리는 없었다. 
강사 박은순 교수(덕성여대 미술사학과)는 2011년 400여 쪽에 이르는 「공재 윤두서」(돌베게)를 발간했었다. 
박은순 교수는 “서양의 이탈리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있다면 동양에는 조선시대의 공재 윤두서가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새삼 모든 것을 꿰뚫어 버릴 듯 치켜세운 강렬한 눈빛과 한 올 한 올 곱게 다듬은 무성한 수염 그리고 불그스레한 얼굴빛의 공재의 자화상(국보 204호)을 영상으로 보여주며 강의를 시작했다. 
공재 윤두서는 당대 호남 제일의 국부요 정치적으로 남인을 대표하는 해남윤씨 어초은공파 가문의 종손으로 26세 때 과거 초시에 합격했다. 그러나 입신양명의 길을 포기하고 시·서·화에 몰두하며 은둔생활을 하게 된 시대적 상황의 배경설명에서 조상들이 겪어야 했을 온갖 수난과 역경과 수모에 분노의 한숨이 신음처럼 새어 나왔다. 
또 한편으로는 조선의 강고한 국가이념이 된 유교와 맞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실사구시의 토대를 이루게 되는 천문학, 의학, 수학, 지리학, 병법 등의 선구자가 됐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두 어깨가 으쓱해졌다. 
특히 공재 윤두서는 그림에서 사군자에 매달리던 이전의 선비화가들과 달리 진경산수화, 남종화, 사의도, 말그림, 정물화 등 다방면에서 조선후기 회화기법과 화풍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날 강의에서 처음 들었던 공재 윤두서의 문집「기졸」과 집안 어른의 글씨를 모아 제작한「영모첩」, 또 간척지 관련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날 참석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남태평양의 아이티섬은 피카소가 말년을 보냈다는 사실과 독일의 프랑크프르트는 괴테의 고향이라는 이유 때문에 먹고 사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한다.
해남군에서 공재의 선구적 예술세계와 고뇌에 찬 그의 삶을 소설이나 드라마로 제작해 문화적 자산으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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