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호(청년국악인)

 해남 매일시장을 돌아보면, 길마다 샐비어(깨꽃)가 관상용으로 심어져 있다. 붉은 것, 노란 것이 걸음마다 쉼표를 찍듯 피어 있어 절로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나무에서 형제의 결의를 도모했다면, 해남청년 셋은 총총한 샐비어꽃을 보며, 우리가 함께할 공연에 대해 생각했다. 그 생각은 7월 22일 월요일 ‘해남 청년이 간다2 우리문화 더하기 공연’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해 현산면에 있는 새하늘지역아동센터에서 했던 ‘해남 청년이 간다1’ 공연과 다른 점은  해남군의 후원과 해남문화원의 관심을 통해 지역 기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었다는 점이다. 나는 전문국악인으로서 화려한 무대에서 수많은 공연을 했던 경험이 있지만, 이 공연이 나에게 소중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지역 청년이 기획하고 연출하여 세대불문 지역민과 함께 한다는데 있다. 우리가 도전하게 된 계기는 북평국악동호회 어르신들의 든든한 응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이~ 그라제… 더 씨게… 좋제~ 잘혀~” 똑같은 한복을 맞춰 입고 점잖은 갓을 쓴 어르신들이 진도실내체육관 주차장에서 북 연습을 하고 계셨다. 남도국악제 출전자의 모습보다는 추임새로 서로를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러나 방석 없이 맨바닥에서 북을 치고 계신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내 차안에 있던 북과 방석을 꺼내 어르신들께 빌려드리며 여쭤 봤다. 해남에서 오신 분들이었다. 북평국악동호회 어르신들과 4년 전의 첫 만남은 해남이 아닌 진도였다. 일가친척 없는 진도에서 사회생활을 하다 고향 분들을 뵙게 되니 더욱 반가웠다. 수년간 북평국악동호회 회원 어르신들을 부모님 모시듯 이끄신 김동섭 회장님을 만나 그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어르신들이 남도국악제 출전을 준비하는 데 어려운 점, 해남에서 진도로 어떻게 오셨는지 등을 내가 물었고, 어르신들은 내가 진도에 와서 활동하게 된 사연을 묵묵히 들으셨다. 나는 내친김에 기회가 되면 해남에서 국악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말씀도 드렸다. 그날, 어떻게 그런 많은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보통 어르신들과의 대화에서는 나는 들어야 하는 사람이었지, 내 속 말을 쉽게 꺼낼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이 어르신들은 내가 아는 어른들과 조금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청년국악인으로서 활동은 해남군 평생학습 프로그램 ‘늘찬배달강좌’였다. 
국악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 고향이기에, 나의 스승 추정남 선생의 그늘이 너무 크기에, 해남에서의 강의는 세밀한 준비시간이 필요했다. 수강생들에게 누가 되지 않게 더 잘해야 된다는 스스로의 부담감이 있었다.

 내 욕심으론 판소리고법 강좌를 개설하고 싶은데 이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없었다. 소리북과 북을 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김동섭 회장님께 전화를 드려 말씀드렸다. “걱정하지 말어요, 박선생이 북평에 온다믄 우리가 다 알아서 준비할게요.” 그 한마디에 내 고민은 쉽게 해결되었다. 첫 수업, 북평 어르신들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큰절을 올렸다. 다들 떠나는 해남에서 청년국악인이 고향에 돌아와 지역에서 버텨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르신들의 격려와 응원은 나를 성장시키고 지역에서 바른길을 갈 수 있게 해주는 큰 힘이 됐다. 

 이번 공연은 내 판소리에 어르신들이 북장단을 받쳐준다. 이 합북 소리는 바람에 파도가 밀리듯 다음 세대가 해남문화예술을 확장할 수 있게끔 받쳐주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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