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길 록(남도의병 역사공원 해남유치 상임대표)

 남도의병 역사공원 해남군 유치 대표회의 자문위원에 명현관 군수를 비롯한 윤영일 국회의원,  도의원 및 군의원 전원이 참여했다.
지난 7월 18일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해남 항일운동 학술회의 토론에 앞서 거행된 위촉식에서 윤영일 국회의원을 자문위원장에, 명현관 군수와 이순이 군의회의장, 윤재갑 민주당 해남·완도·진도지역 위원장을 명예 대표에, 김성일·조광영 도의원과 김병덕·김석순·김종숙·이정확·서해근·이성옥·박상정·박종부·민경매·송순례 군의원 등 16명을 자문위원에 위촉했다. 
여·야 구분 없이 남도의병 역사공원의 해남군 유치라는 대의명분 앞에 의견을 모으고 단일대오를 꾸린 것은 해남의 발전에 함께하겠다는 미덕이자 해남출신 선량들의 미담이 아닐 수 없다. 
땅끝 해남은 1592년 임진왜란과 1597년 정유재란 때 수많은 의병들이 활동했던 곳이다.
특히 명량해전은 12척의 판옥선으로 133척의 왜선을 격침시킨 세계 해전사상 최고의 전승을 거둔 기록으로 남아있다. 또 정유재란 때 옥천면 성산대교들 전투는 일본의 신식무기에 맞선 1만여 명의 의병들의 전투였으며 이곳에서 죽은 의병들을 묻은 무덤이 만의총이다. 만의총은 13기 정도 존재했지만 1990년 경지정리 때 거의 사라지고 현재는 3기만 보존돼 있다. 
또한 대흥사 심적암은 한말 마지막 의병투쟁 장소이다. 
1909년 7월8일 대흥사 심적암에서 합류한 의병들은 다음날 새벽 4시경 왜군 헌병대의 습격을 받아 60여 명의 의병들과 6명의 스님들이 참살당하고, 대흥사 심적암은 일본군의 방화로 전소됐다. 다행히 110년이 지난 2018년에 복원이 결정됐으니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1894년 동학혁명운동에 이어 일어난 1919년 기미 3·1운동 때는 해남 장날에 해남군민 1,000여 명이 5차례, 우수영 장날에도 500여 명이 5차례나 항일 만세운동을 펼쳤다.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과 1931년 호남 최대 항일운동인 전남운동협의회 사건 때도 수백 명이 체포되고 구속되는 항일의병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런 전통을 해남 출신의 국회의원, 도의원, 군의원들과 다 같이 계승 발전시키고자 한다. 옳은 일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의롭게 단결할 것을 당부드린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해남군의회에 발의된 안건들의 의안 처리결과를 정보공개청구에 의해 열람해보았다. 원안가결 80%, 수정가결 12%, 보류 6%, 부결 2%였다. 
근래 부결된 로컬푸드직매장 건도 이번 자문위 위촉식처럼 군민에게 필요한 의안을 100% 찬성으로 통과시켜줄 것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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